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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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라인 4호 - S에게서재를쌓다 2016. 11. 29. 23:15
그는 맨 처음 이곳에 내려 왔을 때,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서툴렀고, 그래서 가로막히는 막막한 순간이 계속됐다. 지역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야 되겠다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떳떳하기 위해선 지금의 묵호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역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그는 보다 가깝게 묵호의 일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통하며 다양하게 지금의 묵호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 p. 33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는 한창 젊었다. 무척 앳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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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수잔극장에가다 2016. 11. 28. 23:02
나갈까 말까 수도 없이 망설였다. 죽은듯이 누워 있다 굴짬뽕을 시켜먹고, 티비를 보다 다시 잠들고, 공부하다 들어온 동생이랑 치킨을 시켜 먹고 다시 누웠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고 누워 저녁을 보낸다면, 나는 어제보다 더한 돼지가 되겠지. 흑흑- 나가보자. 친구가 예매권이 있어서 예매를 해준다고 했다. 레이디 제인, 이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레이디 수잔, 을 예매해줬다. 제인 오스틴의 첫 작품.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들을 보면서 가슴 떨렸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여자 주인공도, 남자 주인공도 참 매력적이었는데. 키이라 나이틀리의 오만과 편견은 최고였지.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는데. 이딴 생각들을 하며 영화를 봤다. 주인공 레이디 수잔이 너무나 공감할 수 없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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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학교모퉁이다방 2016. 11. 27. 23:06
11월 마지막 토요일, 우리는 강남역에 있는 한 쿠킹스튜디오에 모였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눈이 마구 쏟아지던 날이었다. 첫 눈. 스튜디오의 창 밖으로 첫 눈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알아보는 맥주학교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론 수업을 하고, 시음 맥주와 음식을 먹고, 수료식을 했다. 수료증에는 각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불리고, 앞으로 나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수료증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했고, 어떤 사람은 포옹을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지난 6주동안 어떠했는지 소감을 이야기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맥주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가고 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맥주친구를 알게 되어서, 알지 못했던 맥주의 세계를 알게 되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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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극장에가다 2016. 11. 23. 21:31
건강검진이 있어 연차를 썼다. 검진을 하는동안 병원 근처 극장 시간표를 검색해봤는데, 집 근처 극장에서는 내린 가 한 회 상영하는 걸 발견했다. 평이 하도 좋아서 못 본 걸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신선설농탕에 들어가 떡만두설농탕 한 그릇을 먹고, 커피를 사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왔다. 좌석 앞에 길다란 탁자가 있는 관이었다. 예매할 때 팔린 표가 없어서 혼자 보나 싶었는데, 두 명의 관객이 더 들어왔다. 영화는 무척 좋았다. 텍사스를 배경으로 은행을 털어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농장땅을 지키려는 형제와 그들을 뒤쫓는 퇴직을 코앞에 둔 베테랑 형사의 이야기이다. 풍경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쓸쓸했다. 영화를 보면서 예상되던 결말이 있었는데, 틀어졌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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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대를 본 남자극장에가다 2016. 11. 8. 23:43
이틀 연속 칼퇴기념으로 극장엘 갔다. 사실 보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오고, 제작진이 만든 영화라고 하길래 를 보기로 했다. 좌 버터구이, 우 맥주를 두고 한산한 극장의 중앙자리에 앉았다. 흠. 영화가 지루해서 겨우 봤다. 인도의 천재 수학자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실망스럽고, 이야기도 지루했다. 제레미 아이언스 때문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평면적인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인물. 제레미 아이언스는 고독한 학자 역할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제일 강력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의 영화는 인데, ( 시리즈의 열혈팬이었다! 4편 빼고-) 거기선 섹시한 악역으로 나왔더랬다. 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적당히 낡은 양복을 입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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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여행여행을가다 2016. 11. 7. 21:46
가을이 어렴풋이 시작되던, 구월에 다녀온 삼척. 막내가 숙소를 저렴하게 잡을 수 있다기에 셔틀버스를 타고 둘이서 다녀왔다. 삼척은 처음이었는데, 바다가 엄청났다. 바람과 파도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누가 뭐라해도 낮술이지. 밤에 발코니 창을 열어두니 쏴아쏴아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흐려서 아쉽긴 했지만, 바닷가 산책. 쏴아 쏴아쏴아 쏴아 쏴아쏴아 쏴아 쏴아쏴아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그 바위 쏴아쏴아쏴아 파도의 소리와 높이에 속이 뻥하니 뚫리는 기분이었다. 삼척에도 커피집이 많구나. 해가 스물스물 졌다. 가까운 거리였는데, 지리를 잘 몰라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아주머니가 조개구이를 먹겠다는 우리를 말렸다.흐린날은 해산물 먹지 말아요. 그리하여, 백반. 택시 타고 온 길을 기억해뒀다 돌아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