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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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서재를쌓다 2016. 8. 30. 22:00
동생이랑 오사카-교토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들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동네 사람들만 갈 법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사케와 오뎅탕을 시킬 작정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 들어가면 훈훈한 분위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닐 때 일부러 큰 길 쪽에 있는 가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여긴 어떨까, 여기가 더 낫다,며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이 가게다 싶은 곳이 있었다! 크기도, 밖에서 언뜻 보이는 분위기도 딱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벌써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몇 번을 거절 당하다, 결국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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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을 위한 다짐모퉁이다방 2016. 8. 29. 21:47
쉬는 날 아침에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제일 좋은 건, 이른 새벽에 보기 시작하는 영화. 휴일인데 일찍 일어났고 다시 자버리기는 아까울 때,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찾아본다. 너무 밝지 않고, 너무 어둡지 않은 그런 영화. 그런 영화를 찾아냈으면, 이불을 다시 덮고 비스듬하게 누워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거다. 너무 느리디 느린 영화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게 되는데, 그런 일이 참으로 많았다. 지루하지도 않고, 마음 깊이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하나 이상이 되는 꽤 괜찮은 영화도 있었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해가 완전히 뜬다. 그렇게 되면 아침도, 그날 하루도 뿌듯하다. 그런 이유로 극장에서 보는 영화도 조조가 좋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며 황급하게 나가는 일도 좋고, 아침 할인이 되는 샌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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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서재를쌓다 2016. 8. 23. 22:57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람들이 책을 매우 열심히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겨울이 걸어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독서에 매우 큰 의미가 가치를 두는 듯하다. 집의 서가가 얼마나 충실한가로 그 사람의 가치가 판가름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구에 비해 대형 서점이 많고, 아이슬란드 문단도 활발해,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표 장편소설 을 라디오에서 몇 주에 걸쳐 낭독했고, 그 시간에는 전국민이 말 그대로 라디오 앞에 못박혀 있었다고 한다. 버스가 운행을 멈추고, 어선도 조업을 중지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작가수도 많아서 에리캬비크에만 340명이 '작가'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가세 마사토시 주연의 영화 에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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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일들모퉁이다방 2016. 8. 20. 10:17
잊지 않으려고 찍어둔 이야기들. 원래도 많았지만, 여름이 되니 맥주사진이 더욱 많아졌네. 이번주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곧 가겠구나.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약간 달라졌다. 견딜만해졌다. 이천십육년 여름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8월에는 맥주 사진을 따로 올려봐야겠다. 9월에는 요가를 해보려고 신청해뒀다. 남은 여름아, 잘 부탁한다! 7월에 만난 6월의 시옷의 모임. 새 멤버가 들어왔고, 이 날 간만에 독서모임답게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비가 아주 많이 왔다. 오키나와에서 사온 프랑프랑 미키접시의 활용. 동생이 비리다고 해서 혼자 꾸역꾸역 다 먹었다. 동생이 독일에서 사다준 맥주 마지막 캔. 먼길 오느라 고생했다. 잘 가라. 오키나와에서 사온 맥주 티셔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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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서재를쌓다 2016. 8. 18. 23:09
친구와 홋카이도를 가기로 결심하고, 홋카이도 책을 찾아봤다. 가이드북 말고 에세이. 책이 적었는데, 오지은의 홋카이도 여행기는 집에 있었고, 이 책이 궁금했다. . 평이 좋아서. 홋카이도의 겨울 이야기이긴 한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합정점 중고서점에서 샀다. 몇장 뒤적거리고 잊고 지내다 여행 가기 직전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소설가가 쓴 홋카이도 여행기였는데, 무척 감상적인 글이었다. 거기서 을 소개 받았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에서, 선교 활동 중에 붙잡힌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는 배교를 강요받는다. 배교의 증명은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발로 밟는 것으로, 어찌 보면 허무하리만큼 간단한, 그러나 신앙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절차다. 성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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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후모퉁이다방 2016. 8. 16. 22:20
거제에 갔다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리고 삼일을 푹 쉬려고 했다. 토요일 저녁, 삿포로에 함께 다녀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금령아, 아버지 돌아가셨단다. 나 지금 집에 간다.' 삿포로에서 우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없을 줄 고등학교 때 상상이나 했냐며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친구는 또 다른 하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요일 새벽,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상태에서 티비도 켜지 않고, 음악도 틀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친구를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갈 친구.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삶.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삶. 친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 삶을 생각하다 목이 메여왔다. 몇년 전 친구는 많이 아팠다. 친구의 아버지가 소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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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서재를쌓다 2016. 8. 6. 00:50
한번도 안 가봤지만 숲님이 추천해 주셔서 언젠가 가 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동네 북카페가 있다. 한번도 안 가본 주제에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 놓았는데, 어느 날 소규모의 일본어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인이 가르쳐주고, 수업 속도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거다 싶었다.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설명을 해주시는 분의 목소리와 말투가 좋았다. 목소리 만으로 좋은 사람이구나 신뢰감이 느껴졌다. 카페 스텝인데,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일본여행을 가면 서점에 가곤 하는데, 무슨 책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할 결심을 했다고. 여러 가지로 좋았는데, 수업료가 비쌌고, 히라가나부터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망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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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밤, 오키나와여행을가다 2016. 8. 3. 22:02
이제 뭘 하지?내 물음에, C가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글쎄, 어디 카페나 갈까?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땀이 마구 흘러내렸다. 흙마당에서 뛰어놀던 동네 소년들이 우리를 보고 씩 웃었다. 수줍고 맑은 웃음이었다. 가도가도 쉴 만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 걷는 C는 미안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 좀 재미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정이현, '두고온 것', 중에서 버스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옛 미군기지였던 아메리칸 빌리지였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도시형 리조트 지대'. 우린 나머지 일정을 여기서 묵기로 했다. 중부 바다도 보고, 쉬엄쉬엄 쉬면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도착하고, 가이드에게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다. 짐을 건네받고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