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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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서재를쌓다 2016. 2. 28. 22:38
이렇게 남쪽 나라에서 보낸 나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 200일 동안 긴장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 슬렁슬렁 돌아다녔다. 매일 산책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고, 제법 글을 쓰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적다 보니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고요히 호흡을 고름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 건 물론이다. 일상보다 설레고, 여행보다 편안한 날들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게 될 것 같다.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며 덜 쓰고 덜 갖되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은 모두가 같은 곳을 찾아가 같은 것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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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E모퉁이다방 2016. 2. 23. 22:33
세어보니 거의 일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E와 나는 작년 이맘 때쯤 전주 여행을 갔었다. 오직 가맥집을 가기 위해. 금요일 퇴근을 하고 만나 고속도로를 달려 한밤에 전주의 복작복작한 가맥집에 마침내 앉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설레였었나. 그때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서울에 괜찮은 가맥집이 있다고 해서 간만에 E와 만났다. 우리는 클라우드 맥주병으로 테이블 한 면을 가득 채웠다. 먹태도 먹고, 과자도 먹고, 사발면도 먹었다. E는 역시 맥주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는 어떻게 이렇게 질리지 않을까. 맥주를 마시다보니 비가 왔다. 술맛이 더 났다. 우리의 목표는 잔뜩 마시고 취하지 않기였다. 익선동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언니, 요즘 이 골목길이 뜨고 있대요.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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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포크무대를보다 2016. 2. 10. 19:10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S가 그랬다. 우리는 강아솔과 이영훈의 공연을 보고, 금룡통닭으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맥주를 마시다 S가 말했다. 언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게 내가 기도하고 있어. 언닌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야. S는 내가 빌려준 책을 돌려주며 퇴근길에 먹으라며 말랑카우도 여러 개 넣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맥주도 귀엽게 리본을 묶어 넣어줬다. 이런 다정한 아이가 다 있나. S를 위해 나는 올해 꼭!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강아솔과 이영훈은 우리에게 여러 노래들을 들려줬다. 그 중 몇몇 곡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에 남아 여러 날 반복해서 듣고 다녔다. 출근길에, 퇴근길에, 일할 때에, 이유없이 길을 걸을 때에. 강아솔은 농담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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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실티비를보다 2016. 2. 3. 23:11
지난 12월의 메시지. - 언니 72초티비 오구실 알아? - 엉 보는데 언니 생각나. - 귀엽고 몽글몽글한 드라마임. M 덕분에 알게 된 드라마. 12월에 한번 보고, 1월에도 또 한 번 봤다. 2월이 되었으니 한 번 더 봐야지. 몽글몽글한 드라마를 보고 내 생각을 해 준 사람도 고맙고, 오구실도 고맙네. 오구실도 나처럼 연애고자네. 그렇지만 몽글몽글한 연애고자인 것이다. 연어덮밥과 우동을 나눠 먹는 야근, 술이 잘도 들어가서 조심해야 되는 날 잠깐 밖에 나와 바람 쐬는데 따라나오는 두근거림, 무심하게 내일의 약속을 잡는 쫀득쫀득함, 해장국을 먹고 를 보는 휴일 아침. 아, 오구실. 어떻게 그걸 까먹었어. 보고 있으면 마구마구 설레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2월에는 연애고자짓을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