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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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극장에가다 2015. 9. 30. 22:12
오늘 휴가였다. 지난 달에는 휴가 없이 버텼다. 아침에 일찍 눈이 띄여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고등어를 구워 아침밥을 먹고 상암으로 향했다. 홍상수의 새영화를 보러. 홍상수니까 밤에 어울릴 영화일 게 분명하지만 아침에 서둘러 보고 싶었다. F열 3번 좌석에서 영화를 봤다. 중반 정도까지는 심드렁하게 봤다. 동생 말대로 김민희가 예뻐보이네, 정도였다. 이야기가 끝나길래 기지개를 펴고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라는 타이틀이 한번 더 나왔다. 그런데 극장 불이 켜지지 않고 이야기가 새로 시작됐다. 아, 어쩐지 영화가 지나치게 짧더라 생각하며 다시 자리를 잡고 이어지는 반복되는 이야기를 봤다. 이 2부의 이야기가 내 아침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는 어쩌면 1부의 이야기가 남자의 관점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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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모퉁이다방 2015. 9. 29. 22:24
숙모는 누군가가 찍은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에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포르투갈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들여다보다 어떤 사진을 가리키며 금령아 이 사진 좀 숙모한테 보내주라, 고 했다. 리스본 테주강을 찍은 사진이었다. 어찌어찌하다 결국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혼자갔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많았을 거라고, 그 풍경들은 분명히 깊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다음 번에는 좋은 사람과 함께 가서 혼자 갔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다른 좋은 풍경을 담아오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깊은 밤 맥주잔을 기울이며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 봤는데, 거기에 숙모의 결혼 후 첫 여행 풍경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숙모는 명절 때와 삼촌 휴가 때 어김없이 할머니 집에 내려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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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책나눔모퉁이다방 2015. 9. 29. 17:31
가을맞이 책나눔입니다. 책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팔 것과 팔지 못하는 것을 추려내고 있는 중이에요. 이번에 내놓는 책들은 메모가 있거나, 표지가 지나치게 더러워서 팔지 못하는 것인데요. 혹시 필요하신 분 있으시면 보내드릴게요. 메모가 있는 책이 많아서, 이곳에 가끔씩 들러주시는 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편의점 택배 착불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댓글(책 + 주소 + 전화번호 + 이름) 남겨주세요. 택배비가 있으니, 1권 말고 2권~3권으로 찜해주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봉투가 딱 3권까지 들어갈 것 같아요. :) - 금토일 해외여행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 혀 / 조경란 - 열 두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 윤대녕 - 바리데기 / 황석영 - 퀴즈쇼 / 김영하 - 죽은 왕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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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극장에가다 2015. 9. 24. 23:38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월요일에 친구와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창가에 서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배가 이렇게 나왔어, 하고 배를 가리켰다. 정말 친구의 배는 지난 주보다 몰라보게 나와 있었다. 우리는 커피쉐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역시 CGV. 광고가 10분동안 이어졌다. 이럴 거면 7시 40분 시작이라고 했어야지. 나란히 앉아 광고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광고소리에 아가가 발을 찼다고. 나는 친구의 배에 얼른 손을 올렸는데, 수줍음이 많은 녀석인가 내게는 들려주질 않았다. 나는 를 아주 슬프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의외로 재미난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 만큼 슬프지 않았다. 내가 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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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게모퉁이다방 2015. 9. 23. 23:29
지인님들아, 제가 오늘 아침 핸드폰을 잃어버렸답니다. 정말 말도 안되게 잃어버려서, 어쩌면 찾을 수도 있겠다고 퇴근길에 기대를 했었는데. 신호만 가고, 누군가 주웠는지도 알 수 없고, 도로변에서 그대로 뽀개졌는지도 알 수가 없답니다. 현재로선 몇달 전부터 사려고 했던 그 핸드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흑흑- 임대폰을 하려고 하는데, 그전까진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메일이나 블로그 방명록을 이용해주시길 바래요. 평소에도 연락을 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혹여나 모르고 톡을 주신 분들, 네, 제가 씹고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아침 저의 오래된 핸드폰이 홀연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고합니다. - 9월의 좋은 날, 골드소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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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서재를쌓다 2015. 9. 15. 21:39
9월 중순.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가을이 와버렸구나, 아침마다 느끼고 있다. 8월보다 조금 쌀쌀해졌다. 토요일, 학원을 한 번 갔고, 한 번 수업을 빠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고레에다 히로즈 감독의 책 . 그의 영화들처럼 담담한 글들이 담겨 있었다. 무심히 읽고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라고 생각되는 그런 글들이었다. 제법 쌀쌀한 때였으니 가을이나 겨울이었을 거다. 우리집은 복층인데, 여름에는 아예 위에서 자질 못한다. 복층이 겉보기에만 좋다는 걸 이 집에서 살면서 느끼고 있다. 아무튼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올라가질 못하고, 봄과 가을에는 올라가 자기에 좋다. 독립적이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공간이다. 외롭지 않으면서 외로울 수 있는 공간인 거다. 소리로는 외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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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일기, 구월모퉁이다방 2015. 9. 6. 19:49
구월이 시작되었다. 좋지 않은 일로 이번 주 평일이 마무리되었다. 끈기를 가지고 어떤 일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터넷으로 재미삼아 본 사주 내용을 내내 떠올렸다. 사주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주의 조언들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 힘들 때 누군가의 용기와 위로가 필요해서 사람들은 사주를 보는 것 같다. 어쨌든 요즘 저 사주 결과를 시시때때로 떠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포기를 해왔으므로, 이제는 그리 많은 포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번 주말은 온전히 혼자 보냈다. 일찍 신촌에 도착해서 학원 아래 스타벅스에 갔다. 지난 주에 술 마신다고 빠진 학원수업에서 중요한 동사를 공부한다고 했다. 지난 월요일에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술 마셔서 숙취로 빠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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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극장에가다 2015. 9. 3. 20:25
메모를 보니, 3월에 이 영화를 봤다. 샤를로뜨 갱스부르 때문에 본 영화였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망설이다 놓쳤고 3월의 어느 주말 집에 혼자 있다가 영화 목록에 뜬 걸 보고 결제하고 봤던 영화다. 영화는 썩 좋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영 아니지도 않았는데, 요새 계속 생각이 난다. 처음 생각은 희미했다. 누군가 회사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갑자기 동료 머리에 핸드폰을 내리쳤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디서 봤던 이야기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이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급속도로 솟아오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이 누구였지? 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샤를로뜨 갱스부르였다. 삼바는 불법 체류자였고, 샤를로뜨 갱스부르는 자원봉사로 그를 도우러 왔다가 어찌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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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그녀는서재를쌓다 2015. 9. 2. 22:15
마지막에 가마쿠라 바닷가에서 친구들이 커다란 소라게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후타는 생각한다. "이런 광경도 얼마 안 남았구나. 4월이 오면 아마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4월이 오면 그녀는." 일요일에는 '이대'로 영화를 보러 갔다. 다큐 영화제 마지막 날이었는데, SNS에서 에 관한 글을 보고 보고 싶어져서 보러 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매달 한 번씩 티 모임을 갖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하지만, 할머니들은 처음부터 할머니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줍은 아가씨였다가,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었다가, 결혼을 한 유부녀가 되고,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고, 손자손녀를 본 할머니가 되었다.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는데, 감독이 말했다. 대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