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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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극장에가다 2014. 12. 31. 23:43
와, 근사했다. 구름 말이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그 '클라우즈'. '클라우드'가 아니라 '클라우즈'. 스위스의 실스마리아라는 곳에서는 이탈리아로부터 넘어오는 '클라우즈'들을 만날 수 있는 깊은 협곡이 있다. 구름들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는데, 이 깊은 협곡을 넘어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꼭 파도 같다. 그러니까 산의 파도라고 해야 하나. 강의 파도라도 해야 하나. 영화에 언급되는 것과 같이 뱀 같기도 하다. 거대한 구름뱀. 구름들이 살아 있는 뱀처럼 협곡을 지난다. 부드럽고도 강렬하게. 지난 토요일,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기 전, 미용실에 갔다. 늘 가는 이태원의 미용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언니 혼자서 운영을 했는데, 너무 바빠서 그런지 인턴 한 명이 들어왔다. 친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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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에서 먹은 것들여행을가다 2014. 12. 25. 13:27
대개 귀국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적으로 그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결과가 좋은 것 같다. 그 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굵은 라인이 형성된다.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그 이상 오래 내버려 두면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다. 모든 일에는 어디까지나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 7쪽, 이 구절을 읽은 뒤로부터 여행기는 한두 달 정도 지나서 쓰는 것이 좋다, 는 하루키의 여행기법을 실천해보려고 하고 있다.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만이 떠오르는,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인 하루키의 여행기 작성법.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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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 J에게극장에가다 2014. 12. 22. 22:13
금요일, 우리는 간만에 만났다. 맥주잔을 부딪히는 것도 오랜만. 각자의 이유로 그동안 맥주 섭취를 끊고, 줄였었다. 지난 오뎅집에서도 오랜만이었는데, 이번에도 오랜만이네. 친구는 최근에 을 다시 읽었다고 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 덕분에 을 읽었었다. 십년 쯤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도 했다. 언젠가 이 긴 영화에 대해 친구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인 영화라고 했다. 여자 둘이 사랑을 하지만, 동성애에 국한할 수 없는 영화라고 했다. 그냥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이번에는 친구가, 니가 꼭 봤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정말 열심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정말 이렇게 열심히 써 본 적이 없다. 써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끝장을 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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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서재를쌓다 2014. 12. 17. 23:30
상호도 없이 그저 '실비집'이라고 불렸던 그때, 최대 여섯 팀이 이 드럼통을 놓고 화덕에 고기를 구웠다. 여섯 명이 아니라 여섯 팀! 그러니까 화덕 하나에 여섯 무리의 고기가 다 올라간 것이다. 고기가 섞이기도 하고, 먼저 익으면 다른 손님들에게 고기를 밀어주기도 했다. 상상만 해도 훈훈한 장면이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한다는 커뮤니티 테이블의 진정한 원형인 셈이다. "그랬지. 멋있고 정겨웠어. 어이 형씨. 이거 한 점 드슈, 그러면서." - 79~81쪽, 서울 연남서서갈비 "브랜드가 백화수복과 금관 청주가 있는데, 수복이 더 비싸거든요. 문제는 콜라병이 다 똑같잖아요. 그래서 둘을 구별하기 위해 백화수복을 담은 콜라병에는 빨간색 철사를 걸어두었어요. 그게 넥타이를 닮았다고 사람들이 '넥타이 한 병!'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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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모퉁이다방 2014. 12. 14. 16:51
금요일에는 야근을 하다 먼저 퇴근을 하고 낮에 내린 눈을 치우며 시동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U씨에게 카톡이 왔다. 지금 가자고 하면 안 갈거죠? 누룽지 통닭장작구이집 이야기다. Y씨랑 가방을 챙겼다. 그래, 가요. 말로만 듣던 누룽지 장작구이 집에서 500cc 세잔을 하고 Y씨랑 서울로 가는 택시를 탔다. Y씨가 통닭을 먹으면서 그랬다. 우리 이제야 진짜 회사원 같애요. 5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이다. 토요일에는 일찍 눈이 떠졌다. 지난주 토요일에 출근을 해서 10시까지 몸을 움직인 터라 지난주 내내 피곤했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이틀 내내 늦잠을 자려고 했었다. 고민하다 세수만 하고 잠바를 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핸드폰으로 조조를 예매했다.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봤다. 남자 배우의 연기력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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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서재를쌓다 2014. 12. 10. 00:09
요즘 월요일마다 치과에 다닌다. 치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칼퇴를 해야 하므로 안 그래도 일이 많은 월요일을 정신없이 보내고, 치과에 도착해서 대기실이며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친절한 치과지만 어디가 안 좋고, 또 어디가 안 좋고, 그러므로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면 기분이 처진다. 그렇게 짧은 진료를 마시고 치과를 나오면 숙제를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겨울바람이 상쾌해진다. 비록 한 주 뒤에 이 과정이 다시 반복되지만. 이번주 월요일, 마취가 풀리지 않은 채 집에 도착해 씻고 소파에 앉아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래, . 마취가 풀리고 왼쪽 이가 아프면 신경치료를 해야한다. 아프지 않으면 신경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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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가 매혹된 라틴아메리카서재를쌓다 2014. 12. 4. 23:35
사랑에 빠진 아이가 있다. 최근에. 그 애는 순식간에 그 사람에게 빠졌다.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자마자 웃고, 늘 그 사람 생각을 한다. 왜 그 사람은 나한테 이 말을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나봐. 나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 이야기 뿐이다.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입맛도 없어졌단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졌어, 라며 청소를 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평소에 절대 청소를 하지 않는 아이가. 사랑의 힘은 이런 거구나. 긍정적인 기운이 그 아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래, 연애, 해 볼만 한 거구나 생각했다. 아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이 책들을 읽었다. 김남희가 1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온 얘기. 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