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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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죠지의 청춘시대여행을가다 2014. 10. 30. 23:58
청춘시대 둘이서 몇번이나 여기에 왔던지. 행복했던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 추억의 벤치 2003.07 결국 태풍 때문에 가마쿠라와 에노시마는 못 갔다. 그게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웠다. 마지막 날, 신주쿠 역 코인 라커에 짐을 넣어두고 키치조지에 갔다. 그리고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저 벤치를 만났다. 벤치마다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벤치의 옆옆 벤치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붓같은 도구를 들고 벤치를 청소 중이셨다. 아주 작은 먼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구석구석 꼼꼼하게 쓸고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딱 그 벤치 하나만 오랫동안 청소하셨다. 이 벤치들은 뭘까 궁금했다. 이 문구를 새긴 사람들은 누군지, 이 곳에 어떤 추억이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청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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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뒤여행을가다 2014. 10. 29. 22:42
여행 셋째날. 숙소에 돌아와 씻고 누우니 완전 체력 소진. 그래도 일기는 쓰고 자야 하는데, 하니 언니가 그럼 단어들만 적어두고 얼른 자라고 했다. 그래서 정리된 셋째날의 단어들. - 날씨 / 하이파이브 / 땡볕 / 최고의 이혼 세탁소 / 우레시의 뜻 / 우레시 푸딩 / 노랑 호랑 배추흰나비 / 엽서 / 에어컨 / 편의점 아이스크림 / 유자라멘 / 에스컬레이터 바로 백 / 서서 하이보르 / 댕기열모기 / 히로오 공원 1번 출구 2번 출구 / 아무도 찾지 않는 하지만 화장실 깨끗 / 맥주 공짜 / 동전 때문에 스미마셍 / 생각도 못했던 / 게이호 빌딩 알려줬던 '속보' 할아버지 짱 친절 / 당장 나가고 싶었던 돈키호테 / 장어마그네틱 / 다른 데는 없었던 고양이 워터프론트 우산 / 쌀인간을 깨닫다 /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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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로, 비오는 밤여행을가다 2014. 10. 29. 22:09
여행갈 때마다 늘 최고로 여기는 것. 하루종일 열심히 돌아다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씻고 동네로 나가 맛있는 음식과 생맥주로 배를 채우고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것. 둘째 날 밤, 비가 오고 있었지만, 했다. 최고로 여기는 것! 7시에 메구로역에서 언니와 만나기로 했다. 누구든 10분이 지나면 벌써 돌아와 있거나, 늦는 거라고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버려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고 기다리다 10분이 되어도 언니가 안 나타나길래 아파서 먼저 들어가 있나보다 하고 숙소로 갔다. 방에 있을 줄 알고 카운터에서 열쇠도 안 받고 곧장 올라갔는데, 언니가 없었다. 카운터에서 열쇠 찾는 말을 언니가 알려줬고 그걸 적어뒀었다. 그 페이지를 찾아 더듬더듬 말을 건네고 열쇠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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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메모들모퉁이다방 2014. 10. 25. 08:24
바야흐로 가을. 추워졌다. 며칠 전에 두꺼운 후드티를 꺼내 입었는데, 앞 주머니에 지난 초봄의 메모가 있었다. 무지에서 파는 에코백에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스탬프로 찍어서 가지고 다닐 생각으로 적어놓은 거였다. 정작 무지에 가보니 가방 끈이 너무 짧아서 쓸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던 계획. 메모에는 헤밍웨이, 카버, 고흐, 서머셋 몸, 앤드류 포터, 호시노 미치오, 위화의 이름이 영어로 씌여져 있었다. 여행은 '나중에 노년이 되어서 시간과 돈이 넉넉할 때 해야지'라고 뒤로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돈은 비록 빠듯하더라도 젊었을 때 부지런히 다니며 견문을 넓혀야 지적 재산으로 추적되어 세상에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될 수 있음을 지우펀에서 배우고 간다. 하루라도 어렸을 때 여행을 떠나야 한다. - 이건 올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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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일상산책, 야나카여행을가다 2014. 10. 22. 21:38
사실 가구라자카에서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갈까 했다. 두껍긴 하지만, 반팔을 입고 나와서 너무 추웠다. 계속 비 맞고 다니니 다음날 감기에 걸려 하루를 온종일 날려 버릴까봐 걱정도 됐다. 보고 싶었던 야나카 산책 거리는 타바타 역에서 시작해 닛포리 역에서 끝난다. 책에 의하면 3~4시간 소요. 어차피 보고 싶은 것은 닛포리 역에 다 있으니까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갔다가 조금 둘러보고 숙소로 일찍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언니를 기다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본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두 정거장 더 가 타바타 역에서 내렸다. 일단 첫번째 코스. 타바타문사촌기념관이다. 타바타에는 문인들이 많이 모여살았다고 한다. 동네가 좋아 모이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좋아 모이고 그랬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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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일상산책, 가구라자카여행을가다 2014. 10. 21. 22:23
이다바시 역과 가구라자카 역 사이 언덕에 있는 가구라자카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그 옛날 기모노를 차려입은 게이샤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뿌렸을 이곳은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 좋다. 수많은 인연이 밟고 지나다녔을 돌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아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 바람의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알려졌으며 를 쓴 나츠메 소세키도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p. 26 이 책이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덕분에 길을 많이 헤매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해야겠다. 헤맨 건 가구라자카에서. 메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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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일상산책, 시로가네여행을가다 2014. 10. 20. 22:12
고급스러움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로가네라는 명칭은 피천득의 수필 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1947년 구가 통합되면서 시바구가 미나토구로 변경됐지만, 도쿄로 유학한 그가 머물던 사회교육가 선생의 집이자 어리고 귀여운 꽃 아사코가 살던 지역이 '시바구 시로가네'다. 창문과 지붕이 뽀족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속삭였던 소녀 아사코와 피천득의 인연이 짧고도 길게 얽힌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 p. 392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이 책이 출간됐다. 제목도 컨셉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도쿄는 서울과 많이 비슷하다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화려하지 않고 소소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 서울로 따지면 서촌이나 북촌, 광화문 같은 곳. 산책하기 좋은 길을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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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데이즈티비를보다 2014. 10. 19. 20:38
연인이 된 카이와 사에. 사에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몇년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둘은 만나게 되고, 모난 성격의 사에를 카이는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사에는 그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서 너무 고맙지만 자신의 현실 때문에 행여 그에게 누를 끼칠까봐 더 모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카이에겐 똑 부러진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만 각자 키워간다.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 바라는 미래가 달라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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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모금, 에비수 맥주박물관서재를쌓다 2014. 10. 12. 11:15
도쿄는 흐렸다. 여행 첫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인천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보니 낮인지 저녁인지 모를 정도로 흐렸다. 그래서 걷기 좋았다. 비도 오지 않았고, 원래 흐린 날을 좋아하기도 하고. 넥스를 타고 고탄다에서 내려 1시간 넘게 기다려 스테이크를 먹고, 메구로의 숙소로 이동했는데 Y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감기가 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날의 원래 일정은 고탄다에서 함박스테이크 런치를 먹고 (우린 늦어서 런치를 못 먹었지 ㅠ), 메구로 숙소에 짐을 풀고, 배경지 나카메구로를 걷고, 부유한 동네라는 다이칸야마를 구경하고, 에비스에서 저녁으로 유자라멘을 먹는 것. 아, 에비스 전에 일정이 있었다. 에비수 맥주박물관에서 갓 나온 신선한 에비수 생맥주를 마시는 것. 결국 언니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숙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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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서재를쌓다 2014. 10. 3. 22:19
책을 떠나보내며, 잊지 않으려고 옮긴 구절들. 리장 고성이 유명해진 건 지진 때문이다. 1996년 리장이 속한 윈난성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리장 고성 내의 전통 가옥들은 아무런 피해없이 멀쩡했다. 발 빠른 중국 정부는 이 사실을 알리고자 리장 고성에 많은 돈을 투자했고, 1999년 이에 화답하듯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졌다. 그때부터 대대적으로 진행된 개보수 끝에 리장 고성은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그 무서운 버스를 타나 했는데,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버스에서의 무용담과 그 끝에 찾아낸 보물에 대해 조잘대는 엄마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다.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느려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