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동네에 생긴 조그마한 주점은 통영에서 직배송한 싱싱한 해산물들을 내어놓습니다. 어느 날 주점 앞을 지나가다가 원목의 기둥 위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활우럭구이+생맥주, 환상적인 조합'이라는 메뉴를 보고 동생과 입맛을 다지며 들어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바삭하게 구워지는 생선구이를 보면서 생맥주 500cc를 나란히 마셨습니다. 생선의 살점과 맥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제법 통통해보였던 생선의 살점이 숯불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면서 날씬해져버리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살점을 아쉬워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 주점의 주인이 와서 생선을 뒤집어주며 말합니다. 머리에 붙어 있는 살이 제일 맛있으니 꼭 챙겨먹어요. 나는 그만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을 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읽으며 참 많이도 침을 삼켰습니다. 7편의 단편 속 인물들은 늘 무언가 요리를 하고 그것들을 맛깔스럽게 먹어 치웁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밥과 김치만으로 아삭하고 물컹하게 만든 김치볶음밥,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서른이 된 주인공이 매일 프라이팬 위에 구워 먹었던 비릿한 조기 두 마리,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 순천댁이 매일 새벽 끊여대던 약콩물, <솔숲 사이로>에서 사내와 함께, 그리고 사내가 떠난 후 구워댔던 고기와 솔잎 술, <반죽의 형상>에서 주인공이 끊여먹던 흰죽은 책을 읽은 그 날 집에 돌아와 뚝배기에 긴 시간 들여 끓여 먹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맥주와 곱창,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매콤한 뽈찜과 소주.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당장 소설 속 그네들 틈에 끼여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그네들이 먹고 마시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도 맛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음식들을 먹고 나면 세상이 좀더 편안해질까 하는 생각, 적어도 이 음식들을 먹는 순간에는 세상이 좀더 아늑할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이 음식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어 삼키고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소설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들에서 어김없이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나를 불쾌하게도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것들은 못난 나였기 때문이예요. 못난 내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어 나는 그런 나를 읽어나가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했고, 그런 나의 모습이 작가에게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있을 거란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변화가 싫어 대학원에 그대로 진학했고, 어느 순간 보니 곁에 아무도 없더라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랬고, <분홍 리본의 시절>에서 선배의 아내가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이라고 뱉은 후의 주인공이 말하는 건지, 선배의 아내가 말하는 건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말하는 건지 헷갈려고 뜨끔했던 긴 문장들이 그랬고,  <약콩이 끓는 동안>에서는 밑줄을 어중간하게 그었던 여학생이 그랬고, <솔숲 사이로>는 사내가 온 뒤 그를 질투하고 사내가 떠난 후 그를 그리워하던 단식원 식구들의 막막함이 그랬습니다. <반죽의 형상>은 정말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이 짧은 단편을 읽는 동안 지난 6개월 동안의 나와 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대학시절을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 타고 다녔던 지금은 사라져 버린 725버스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의 뒤편에서 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랬습니다. 언젠가 소설 속 N와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늘 내리던 정류장이 아닌 집의 뒤편의 정류장에서 내려 오랜시간을 헤맨 적이 있어요. 집과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1시간 동안 헤매고 있었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서, 이제는 또렷하게 알고 있는 집 뒤편의 길을 오랜만에 한번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문상>에서의 선배니임도, 선배니임이라고 바짝 달라붙는 그녀도 모두 나와 같아요. 그리고 <위험한 산책>에서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도.

   나는 작가가 채식주의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책을 읽는 틈틈이 앞장으로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몇 년전, 한강의 소설집을 처음 읽을 때도 그랬어요. 고기를 먹지 않고 심지어 화분의 식물로 변해버리는 주인공이 담긴 글을 읽어나가면서 계속 앞장을 넘겨 작가의 얼굴을 자세하게 들여다 봤습니다. 한강도 그랬고 권여선도 조그마한 체구에 굉장히 말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빛이 아파보여요. 어쩌면 고기를 즐겨 먹고, 조그만 체구도 아니고, 무언가를 늘 탐하는 눈빛을 가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들과 같은 글은 쓰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젯밤 악몽을 꾸었어요. 괴물이 쫓아오거나 어딘가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런 꿈은 아니었는데,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등장했고 그녀가 내 마음에 상처를 냈어요. 꿈 속의 나를, 아니 현실의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깨어난 일요일 오전,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여전히 마음이 찢어지는 이런 날, 나는 <분홍 리본의 시절>을 다시 꺼내 들고 어떤 부분을 읽어내려갑니다. 이 문장들이 내게 위로가 됩니다. 조기의 검붉은 혀가 괜찮다고 잘 될거라고 말하면서 사라지는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