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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크 로스코전
    모퉁이다방 2015. 6. 10. 22:45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고독을 끝내고

      다시 한번 숨을 내쉬고

      자신의 팔을 쭉 펴는 것이다.

      - 마스 로스코

     

       6월의 연차에 비가 왔다. 미술관에 들어갈 때는 오질 않았는데, 미술관에서 두 시간 여를 보내고 나오니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세상에. 미술관에서 두 시간을 넘게 보냈다. 그것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김연수 단편에서 알게 된 마크 로스코. 전시가 좋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꼭 평일의 한가한 오전에 가야지 생각했다. 5월에 N언니와 나는 이대에 있는 책과 술을 함께 파는 책방에 있었다. 그날은 이벤트로 이스라엘 음식과 다양한 술을 함께 먹고 마시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오가던 중 마크 로스코전 이야기도 나왔다. 언니는 미술관이 집 근처라고 했다. 그렇게 둘이 6월의 금요일,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처음에는 같은 속도로 그림을 보다가, 나중에는 각자의 속도로 그림을 봤다. 중간에서 우연히 만나면 방금 듣고, 방금 본 그림 이야기를 했다.

     

       비극적 경험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다.

       - 마크 로스코

     

       로스코 채플의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관이 있었다. 로스코가 여행을 가서 어떤 그림을 봤는데, 아주 어두운 곳이었는데 그 그림에서 빛이 났단다. 그 빛을 보고, 자신도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단다. 로스코는 그렸고, 그 그림들이 로스코 채플을 재연한 관에 있었다. 그림도 어둡고, 그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어두웠다.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 군데군데 방석과 의자들이 있었다. 신발소리가 방해가 될까 살금살금 걸어서 그림들을 보고, 의자가 앉았다. 옆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는데, 가만히 있다가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마음에 드는 한 그림 앞에 앉아 가만히 그림을 올려다 봤다. 어두운 색깔 뿐인 그림. 검은 색인데, 그냥 검은 색이 아니다. 가만히 올려다 보고 있으면, 그 그림을 채우고 있는 여러 색깔들이 보인다. 색 아래에 덧칠되어진 색도 보인다. 로스코는 말년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어두운 그림 앞에서 어두운 생각과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빠에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병,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낡은 사무실에서 해가 질 때까지 멍하게 앉아 있었던 아빠, 힘이 없어 손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계속 잠만 자던 내가 태어난 이래 가장 작은 모습의 할머니. 언젠가 사라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이상했다. 그 곳의 색깔과 음악이 자꾸만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울어버렸다. 한번 터지니 눈물이 쉽게 그치질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울고,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레드'를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미술관을 나왔다.  

     

       젊었을 때 예술은 외로운 것이었지.

       갤러리도 컬렉터도 비평가도 돈도 없었지.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그러나 그때가 최고의 시간들이었어.

       우리에겐 멋진 미래만 있었을 뿐이니까.

       - 마크 로스코

     

       미술관을 나와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로스코의 다큐를 보여주는 공간이 있었다. 미국에 있는 로스코 채플을 찾은 사람들의 인터뷰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한 남자의 인터뷰였는데, 그는 그림들을 보고 슬펐다고 했다. 왜 슬펐냐고 묻자, 자신의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모두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했다. 남자의 표정은 편안해보였다.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로스코의 이름이 새겨진 연필 한 자루를 사고, 엽서 네 장을 샀다. 내가 고른 그림들은 모두 어두운 색이었다. 언니도 뒤이어 나와 엽서를 샀는데, 조카에게 보여주려고 산 한 장을 제외하곤 죄다 어두운 색이었다. 어두운 색의 그림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언니가 전시가 어땠냐고 물었고, 나는 다큐의 남자처럼 채플관에서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게 나는 고마웠다. 그리고 그 날 헤이리까지 가서 드뷔시의 월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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