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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서재를쌓다 2015. 6. 5. 08:21

     

       

       두 번째로 만나는 구도 마스터. 5월에는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셔봤다. 두 번씩이나. 한 번은 강남의 엄청 큰 수제맥주집에서. 한 번은 상수의 아일랜드 펍에서. 처음에는 무척 긴장되었고, 두 번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서도 씩씩한 서른 여섯으로 적응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사이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읽었다. 이 책이 시리즈의 첫 권인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나중의 이야기부터 읽게 되었다. 이제 구도 마스터의 이야기는 출간된 책으로는 <벚꽃 흩날리던 밤> 한 권이 남았고, 또 마지막 한 권이 출간되겠지. 그러면 끝. 아쉽다.

     

        산타마가와 선 산겐자야 역에서 나와 역 앞 상점가를 지나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2백 미터 정도 되는 골목의 끝에 막다른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 바로 앞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술집 '가나리야'. 하얗고 커다란 초롱 이외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을린 삼나무로 만든 두터운 문을 열면 카운터 안쪽에 마스터 구도가 있다. 가게에는 열 석 정도의 L자형 바와 2인용 탁자가 두 개 있다. 생맥주는 필스너.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맥주가 갖춰져 있다. 맥주잔이 비거나 오래되서 거품이 빠지면 새 맥주로 바꿔주고, 좋은 재료가 있는 날은 마스터가 묻는다. 마침 이 재료가 들어왔는데, 이런 걸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맛있는 안주와 내 기분에 맞는 도수의 술이 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꿰뚫어 보는, 그게 기분 나쁘지 않은 마스터가 있는, 그리고 항상 미스테리한 이야기가 있는 술집이다. 5월, 두 잔의 맥주를 혼자 마시면서 가나리야를 생각했다. 내게도 가나리야가 있음 좋겠다, 하는.

     

       이번 책에서 좋았던 단편은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마지막 거처'. 사실 나는 이 전에 읽었던 <반딧불 언덕>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마지막 거처'의 이 부분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좋은 안주에 좋은 술을, 좋은 사람과 마시고 싶은 불금이다. :)

     

       조금 더 달라고 하자, 부인은 올해 처음 수확한 가지로 만들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모터크로스 라이더들이 엉망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텃밭에서 자란 가지인 듯했다. 땅에 모래가 섞여 있어서 작년에는 재배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흙을 조금씩 옮겨와 토양을 개량하고, 마침내 스무 개 정도의 가지 묘목을 키웠다며, 처음으로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더욱이 겨자와 누룩과 미소를 균등하게 섞어서 기분양념을 만들고, 가볍게 소금을 뿌려 담근다는 것까지 즐겁게 말해 주었다. 옆에서 차가운 청주를 마시고 있던 데라오카 노인도 들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이 안주에 마시는 술이 최고지."

       '시작 즈음에'라는 제목을 붙인 사진이 그때 오두막 안에서 부부를 촬영한 것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되었다. 그날 밤, 데라오카 노인은 마침내 쓰마키의 명함을 받아 주었다. '마지막 거처'라는 시리즈는 약 1년에 걸쳐 촬영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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