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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딧불 언덕
    서재를쌓다 2015. 2. 25. 23:50

     

     

        지난 도쿄 여행 때 산겐자야에 다녀오질 못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산겐자야가 <수박>을 촬영한 지역이라는 걸 알았다. 가고 싶었지만, 여러 계획들이 있어 가질 못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앗! 산겐자야다! 했다. 이 전에 시리즈가 두 권이나 출간되어 있었는데, 산겐자야가 배경인 줄 몰랐다. 하긴 그때는 <수박>의 배경이 산겐자야인 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바로 구입해서 읽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미스터리물인데 세지 않다. 잔잔한 미스터리물이다. 그리고 매 단편마다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 맥주도 나온다. 이야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갖춘 셈. 이야기들은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소소하고 따뜻해서 정이 갔다.

     

        그러니까, 도쿄 산겐자야 한적한 곳에 맥주바가 있다. 조용한 바다. 하지만 단골손님들이 가득 찰 때도 있으니, 매번 조용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곳의 마스터, 구도 데쓰야.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맥주바 가나리야에 찾아오고 네 가지 도수의 맥주 중에 알맞은 맥주를 시킨다. 원하는 안주를 말하기도 하고, 마스터가 눈치껏 알맞은 안주를 만들어 내어오기도 한다. 그러면 손님들은 모두 만족한다. 세상살이 쉽지 않으니 다들 하나 둘씩 문제나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고, 손님들은 마스터나 단골손님에게 그 문제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다. 이 구도 데쓰야라는 마스터는 조용하고 용-하다. 손님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고민을 다 안다. 그리고 해결책이 될 수 있는 힌트를 넌지시 건넨다.

     

        이런 문장들에는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곧 벚꽃이 필테니까.

     

       도부이세사키 선 아사쿠사 역을 빠져나와 걸어서 아즈마 다리를 건너 상류를 따라 2백 미터쯤 거슬러 올라간 곳에 스미다 공원이 있는데, 벚꽃 피는 계절이 되면 꽃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명소다. (...) 벚나무 밑에는 시체가 잠들어 있다고 하면 퇴폐적인 낭만이 느껴지지만, 그 방수 시트를 보는 순간 갑자기 시트에 둘둘 말아 놓은 부패한 시체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흥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돗자리 정도는 마련할 수 있는 거 아니나며 괜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벚꽃은 떨어질 때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평일의 한낮이라면 더욱. 취객도 없고 시퍼런 방수 시트도 없고, 그저 혼자서 벚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게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그것이 가능한 지금은 의외로... 아니, 아니야."

       손에 든 캔 맥주의 마개를 당기자 성대한 하얀 거품이 쏟아져 나오며 흘러넘쳤다. 서둘러 입술을 가져다 대려다가 그러고 있는 자신이 싫어져서 관뒀다.

        바람은 바람인 채로 좋다. 아, 평일의 한낮.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마음껏 벚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이름 있는 좋은 술 약간과 백화점 지하에서 산 고급스러운 안주 같은 걸 옆에 두고서 먹고사는 데 급급하기만 한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벚꽃을 상찬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사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내 모습을 보면 결국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살아가기 위해 내 한 몸 보전하느라 급급하다. 그러니 바람은 영원히 바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p. 124

     

        이 문장들을 읽고는, 진정 가나리야에 가고 싶었다.

     

       가나리야는 결코 젠체하는 가게가 아니다. 각 요리의 양도 충분하게 제공된다. 가시와기는 마지막 하나를 다 먹고서 혀끝에 남은 환상적인 맛을 맥주로 씻어 낼 때까지 시간 감각을 아예 잃었다. 가게 밖에서 부스럭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알 바 아니다. 맛있는 안주와 맛있는 술. 이 세상에 근심거리는 수없이 많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잠시 모든 것을 잊으련다.

    p. 131

     

       이 소설에 더 마음이 갔던 것은 작가의 이력 때문이기도 했다. 기타모리 고. 서른 다섯에 데뷔해 마흔여덟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30편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가나리야 시리즈는 모두 네 권. 나는 이제 한 권을 읽었으니 세 권의 책을 더 읽으면 가나리야 맥주바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이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애틋해졌다. 그래서 현재 출간되어 있는 두 권을 빨리 읽고 싶기도 하고, 더 묵혀두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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