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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너
    서재를쌓다 2015. 2. 3. 22:09

     

     

       사실 나는 이 책의 보도자료에 반했다. 책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읽고 나는 내가 아는 한 남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첫 문장을 읽기도 전에. 친구에게 함께 읽자고 책을 보내면서 이 책이 우리의 2015년 최고의 책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책을 다 읽은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 저녁에, 내가 물었다. 어땠어? 친구가 말했다. 진짜 있는 사람 같앴어. 스토너. 그리고 생각했어. 이 사람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로 끝난다. 이 책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남자의 한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톰 행크스의 추천글. "이것은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이야기이다." 정말 그렇다.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 한 남자가 영문학 교양과목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나게 되고, 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남자는 교수가 되지만 성공한 교수는 아니었다. 남자는 첫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은 지독하게 불행했다. 사랑하는 딸도 있었지만, 딸과 남자는 서로 마음껏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의 말대로,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는 사랑에 빠진 대상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문학에 빠졌고,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내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했다. 딸 아이도 마찬가지. 그리고 단 한 번, 그에게 진정한 사랑이 찾아왔고, 그는 그녀 안에서 행복을 만끽했다. 함께 책을 읽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나눴다. 다만 그는 투쟁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밀물처럼 몰려온 행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행복을. 밀물의 기억이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체념하는 사람. 내가 읽은 스토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책 뒤표지에 있던 "슬프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위안"이라는 문장이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50년 후에야 빛을 발한 소설. 작가는 스토너를 허구의 인물임을 분명히 했지만, 친구의 말처럼 어디선가 열심히 살다 죽었을 것만 같은 소설. 그게 당신같기도 한 소설. 그래서 내가 마음이 아픈 소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 소설.

     

        이 책에서 가장 신났던 부분이다. 159페이지부터 160페이지. 아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랜 기간 부재 중일 때, 스토너는 딸과 함께 일상을 산다. 그 일상은 소소하고, 평온했으며, 평화로웠다. 그는 그 시간 동안 딸을 더욱더 사랑했으며, 문학에 더욱더 깊이 빠졌다. 그리고 경험하게 되는 어느 순간에 대한 묘사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자신이 성장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의 스토너.

     

        그는 이 새로운 발견에 슬프면서도 기운이 났다.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학생들과 자신을 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기계적인 단계들을 반복적으로 밟으며 그의 강의를 끈기 있게 버텨내던 학생들이 당혹감과 분노를 안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면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는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참석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의 말투에 자신감이 붙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엄격함이 힘을 얻었다.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 p. 159-160

     

       160페이지의 스토너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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