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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가다 2015. 2. 2. 21:48

     

     

     

       그녀의 이름은 셰릴 스트레이드. '스트레이드'라는 성은 그녀가 직접 지었다. 그녀와 그녀의 전남편은 이혼을 할 때 각자의 팔에 같은 모양의 말 문신을 했다. 헤어지지만 서로를 이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문신이다. '스트레이드'는 이혼할 때 그녀가 직접 지은 성이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그녀의 집은 가난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희망은 있었다. 엄마. 극한 환경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엄마. 너희들이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와의 결혼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 항상 음악을 틀어두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알려주었던 엄마. 그녀의 전부였던 엄마. 엄마와 셰릴, 그리고 셰릴의 남동생이 행복해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즈음, 엄마에게 병이 찾아온다. 셰릴은 그 병으로 엄마를 잃고,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다. 아무 남자와 섹스를 하고, 매일 마약을 한다.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나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셰릴은 꽉 막힌 도로의 차 안에서 친구에게 말한다.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도 예전에는 괜찮은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그리고 그녀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엄마를 건강하게 떠나보내기 위해, 아니 건강하게 간직하고 있기 위해 길을 떠난다.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그녀가 걸은 PCT는 멕시코와 캐나다를 잇는 도보여행 코스. 사막과 눈 덮인 고산지대를 지나야 하는 곳이다. 혼자서 걷고, 혼자서 밥 해 먹고, 혼자서 텐트를 치고, 혼자서 책 읽고, 혼자 잠들어야 하는 곳. 철저히 고독한 곳. 그녀는 이 길을 걷는다. 이 끝도 없어보이는 길을 걸으면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엄마, 그리고 전 남편. 모든 게 서툴렀던 처음의 시간들이 지나고 능숙한 트레커가 된 그녀. 그녀가 이 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PCT '여성' 트레커와 함께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트레커가 셰릴에게 묻는다. 걸어오면서 외롭지 않았어요? 셰릴이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는 실제 세계에서 더 외로운 것 같아요. 이 길 위에서는 외롭지 않았어요.

     

       걷는다는 것. 홀로 걷는다는 것. 그 엄청난 힘에 대해 생각했다. 길이 계속될 수록 그녀의 얼굴에서 품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평화로움에 대해. 그녀는 PCT 방명록에 기록했다.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래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이 말은 에밀리 디킨슨의 말, 조니 미첼의 가사, 윈스턴 처칠의 말이지만, 셰릴 그녀의 다짐이고 바램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방명록에 그들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함께 적는다.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조니 미첼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윈스턴 처칠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영화를 보고 나니 막 걷고 싶어졌다. 그래서 토요일에도 걷고, 일요일에도 걷고, 오늘도 걸었다. 벌써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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