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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
    서재를쌓다 2014. 11. 22. 14:00

     

     

        공판이 끝났다. 법원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면서, 나는 아주 잠깐 여름 저녁의 냄새와 색깔을 알아차렸다. 내 움직이는 감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치 피로의 밑바닥으로부터인 듯, 내가 사랑했던 도시의, 내가 행복을 느끼곤 했던 어떤 시간들의 모든 친숙한 소리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나른해진 공기 속에서 신문팔이들이 외치는 소리, 공원의 마지막 남은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의 부르짖음, 도시 고지대의 커브길에 울려대는 전차의 비명 소리, 그리고 밤이 항구 위로 내려 앉기 직전에 울리는 하늘의 웅성거림.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 너무나 잘 알던 것이었는데 이제 내게는 눈 먼 여행길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랬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내가 만족하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꿈도 없는 안락한 잠이었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가 바뀌었는데, 왜냐하면 다음 날에 대한 기다림과 함께 내가 다시 대면한 것은 내 감방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여름 하늘에 그어진 친숙한 길들이 순결한 잠으로 이끌어 가듯 아주 쉽게 감옥으로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처럼.

    p. 133-134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1부의 마지막 장에 합정 편의점 파라솔에 떨어졌던 올 가을의 단풍잎이 빳빳하게 말라 있었다. 친구는 논란이 많은 이정서 번역을 샀는데, 빌려주면서 그냥 <이방인>만 읽으라고 했다. 이 책의 반은 <이방인>이고, 반은 기존 번역을 까는 역자노트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역자노트를 길게 넣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좋은 번역은 이런 역자노트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친구의 조언대로 <이방인>만 읽었다. 다 읽고 검색해보니 이 역자노트 마케팅 때문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수준으로 팔렸다고 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엄마의 장례식 부분이 지나고, 정말 푹 빠져 읽었다. 주인공 뫼르소에도 빠져 있었다.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짧은 출근길에도 읽고, 피곤한 퇴근길에도 읽고, 잠이 쏟아지기 전에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내가 잘 읽은건가 싶었다. 다들 <이방인>이 무척 어렵다고 하는데. 좋은 고전을 읽고 나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잘 읽은 것인가. 결국 읽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잘못되었더라도 내가 읽고 느낀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뫼르소가 1부와 2부에서 각각 다르게 체감하는 '자유'에 대해 골몰했다. 당연시 여겼던 자유가 그에게서 빼앗겨 졌을 때 그가 느꼈던, 그리고 괴로워했던 생각들. 그것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위의 저 인용 문장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카뮈가 썼던 미국판 서문을 찾아 읽었다. 그 서문에서 카뮈는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창조해낸 그의 주인공 뫼르소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알라딘에서 에코백 이벤트를 할 때,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를 주저없이 택했는데, 카뮈의 에코백이 색깔이 좋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그때 <이방인>을 읽었다면, 색깔이 좋은 카뮈 에코백을 주저없이 택했을 텐데. 역시 더 늦기 전에 많이많이 읽어야겠다. 생각해보니, 1부의 마지막 장, 단풍잎이 곱게 말라져 있던 그 장에서 뫼르소의 육체적 자유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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