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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의 일
    서재를쌓다 2014. 11. 20. 23:14

     

     

       내겐 파란색 책이 왔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우표가 그려진. 예약판매 중인 이 책을 주문해놓고 타이완에 다녀왔다. 주문할 때 보니, 돌아왔을 때 받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정말 돌아온 다음날 받았다. 나는 이 책을 15년 동안 얼굴을 보아온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2년 동안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셋에게 각각 다른 색의 책이 왔다. 말랑말랑한 산문집일 줄 알았는데, 왠걸 의외로 단단한 작법책이었다.

     

        프루스트 책으로 1년 계획을 세우는 소설가, 자신을 미남 소설가라고 (미안합니다, 말도 안되는) 자뻑 농담을 건네는 소설가, 자신을 정승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소설가, 출근길 아침 나로 하여금 'Creep'를 듣게 한 소설가(무척 좋았다), 옌벤에서 또 독일에서 오래 머물며 글을 쓰는 (아니 때론 글을 안 쓰고 끼니와 포도주를 챙겨 먹기도 한) 소설가. 책장에 좋은 소설과 좋은 비소설 순위를 매겨가며 꽂아두는 소설가, 나이가 들어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설가, 한때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책에서 은근하게 까고 있는 소설가, 11세기에 일본궁녀가 쓴 수필집을 비소설 쪽 4위에 꽂아둔 소설가, 사전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소설가, 그 분들이 두꺼운 소설을 써내면 읽어 보기도 전에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는 소설가, 천천히 뛰면서(때론 그저 걸으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느껴보라는 소설가, 해가 저물 무렵 편의점 파라솔에서 한 두개의 캔맥주를 마시는 소설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소설가, 소설가의 일을 하는 소설가, 소설가의 일을 쓴 소설가.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이란 간단하다. 계속 쓰는 것. 끊임없이, 꾸준히 쓰는 것. 쓰다보며 알게 된다고, 그러니 쓰라고,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일단 손을 움직여 한 문장이라도 시작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이건 꼭 소설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라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은 일은 하자고. 실패해도 시작해보자고. 그러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소설가, 김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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