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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의 북카페
    서재를쌓다 2014. 8. 2. 08:16


     

       상암동에 맥주를 파는 작은 북카페가 있다고 해서 7월에 갔었다. 상암동 지리를 잘 몰라 조금 헤맸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해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이 책 저 책을 구경하다가 요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서점의 소개글을 읽고 괜찮네, 생각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알딸딸해질 무렵 카페를 나오면서 결국 읽고 있던 책을 그대로 샀다. 나중에 이런 카페를 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여름밤.

     

     

     

     

      

        카페를 나서려는데, "이거 스테디셀러인데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은 정말 좋아요."라며 나를 붙잡는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돌아갈 생각 없이 눌러앉아 있자 푸념을 늘어놓는 웨이터. 그러자 나이 지긋한 다른 웨이터가 '사람은 누구나 밤늦은 시간까지 자기를 감싸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단편이다. 주인의 철학이 담긴 카페에는 정직함과 성실함이 있다.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웨이터가 말하는 카페가 어딘지 모르게 이하토보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p,21, 이하토보

     

       여행 관련 서적들을 들이게 된 것은 주인 부부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행광이어서다. 진열된 책들 중 '파리 책장'에는 <지구를 걷는 법>부터 트뤼포의 <영화독본>, 프랑스 가정 요리와 인테리어에 관한 책, 프랑스 문학, 거기다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까지 꽂혀 있다. 요즘은 인터넷과 가이드북을 통해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후치가미 씨는 소파에 몸을 맡기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누구라도 근사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책의 진열에 공을 들였다.

    - p. 25, 트래블 북스 앤 커피 캣츠 크래들

     

       '북카페 괴담'을 들어본 적 있나요. 직원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 서가에 놓인 책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는 겁니다.

       늘어나는 것은 대체로 카페의 단골손님인 작가나 만화가들의 소행이겠지요. 자주 가는 카페에 자신의 책을 몰래 끼워 놓는다나요.

        직원 허락 하에 카페의 책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작은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근처에 사는 노신사가 산 지 얼마 안 된 책을 가지고 와서 카페 서가에 끼워두고는 카페를 방문할 때마다 야금야금 읽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책을 맡겨두는' 셈이지요. 책장에 진열된 옅은 색깔의 책들 중에서 그가 끼워놓은 실용서를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만큼 조금 튀더군요.

    - p. 34, 북카페의 체온

     

       THESE의 매력은 책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부터 아는 사람만 아는 진귀한 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텐더들이 좋아하는 책들로 구성돼있다. 호감이 가는 부분이다. "손님들에게 권하기 쉬운 책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그렇다. 독서 바의 매력 중 하나는 바텐더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세계관을 한결 넓힐 수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위스키를 마시다가 "이게 스코틀랜드의 스카이 섬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졌어요."라는 바텐더의 이야기를 들으면 책장에서 그곳의 여행기나 지도를 찾아본다. 그러고나면 스카이 섬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이 책에 어울릴만한 칵테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상상했던 칵테일이 나올지, 아니면 생각지 못한 조합의 오리지널 칵테일이 나올지.

    - p. 72, 테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주당들의 바람 중 하나는 '얌전히 취하게 하소서'이다. 맛있게, 즐겁게, 함께한 이들도 모두 유쾌하게, 다음 날 아침도 상쾌하게.

       항상 얌전히 취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다. 그런 식으로 영리하게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주당'이라 불릴 만큼 술을 마시진 않을 테니까.

       맨 정신일 때 그렇게 얌전히 취하는 장면이 그려진 소설을 읽으면 한없이 부러워진다. 반대로 만취해 엉망진창이 된 이야기를 읽으면 '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구나'하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늘 어찌되었든 한 잔 걸칠 나에게 책 속에 등장하는 술은 한없이 따뜻하다.

    -p. 90, 주당의 마음을 읽는 책

     

        이 가게에서는 비영리 민간단체 NPO법인 자립생활 서포트센터가 제공하는 '고모레비커피'(*고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의미한다)'를 판매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두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로스팅.브랜딩한 커피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북카페의 매력이자 역할일 것이다.

    - p. 99, 고엔지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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