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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의 전주
    여행을가다 2014. 5. 15. 19:26

     

       차장님이 셔틀 안에서 그러셨다. 요즘은 다들 놀러 통영이랑 전주에 간대. 그런 전주에 다녀왔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월 연휴 때 전주 한옥마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연휴 때 집에 내려가서 통영에 놀러갔는데, 정말 그랬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주도 그랬겠지. 사람 많은 건 질색이라 영화제 마지막에 전주에 내려갔다. 영화 한 편 보고, 기념품 구경하고 하나 사오면 딱이겠다 생각했는데, 기념품은 벌써 철수한 상태였다. 기념품 보는 건 나의 낙인데. 아쉬웠다. 역시 전주는 덥고, 물이 부족한 도시였다. 잊고 있었는데, 마주하니 다시 새록새록 이 년전 영화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딱 이 년 만에 봄의 전주에 왔다.

     

       언니가 말했다. 오늘이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이야. 나는 언니에게 그 말이 참 멋지다고 말했고, 서울에 와서 동생들에게 그 말을 전하려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시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다. 언니가 다시 말했다. 오늘이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이야.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의 전주에서 많이 걷고, 많이 먹고, 많이 마셨다. 수다도 많이 떨었고, 햇볕도 많이 쬐었다. 영화는 딱 한 편 봤는데, 흠. 별로였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가맥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올해 4대 국제영화제를 모두 점령해보자고 다짐했다. 만보기 어플에 처음으로 만보가 넘는 기록이 생겼다. 이틀 연속.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여행지의 로또를 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비가 내렸고, 어두워지니 내리는 빗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누군가는 잠에 취하고, 누군가는 끝나가는 여행의 추억에 취한 휴일 저녁. 이천십사년 오월에 전주에 다녀왔다.

     

     

     

    우리가 본 영화는 <가녀린 희망>.

    나는 이 영화가 잔뜩 멋을 부린 것 같았다. 그래서 와닿지가 않았다.

     

     

    역시 도착하자마자 전주는 더웠다.

    영화관의 화장실에는 수압이 약하니 오래 눌러달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2년 전과 똑같다.

     

     

    오자마자 영화 본다고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어렵게 찾은 중국집에서 시원한 맥주부터 야금야금 마셨다.

    이름하야 낮술.

     

     

    언니가 기대했던 물짜장. 나는 별 기대 없었던 물짜장.

    왠걸 맛있었다! 사유리, 인정합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

     

     

    전주는 해가 좋아서 그런가. 그림자도 참 좋았다.

     

     

    언니가 좋아했던, 연두연두.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미사 중이었다.

     

     

     

     

     

     

     

    해가 지려고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의 해가 이렇게 이쁘구나.

    온통 따스한 빛깔이었다.

     

     

     

    한옥마을을 걸었다. 전주에 두 번 왔는데, 두 번 다 한옥마을을 걸었다.

    이번에는 두 번 걸었던 것보다 더 걸었다. 그러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졌다.

     

     

    아이스 맥주. 거품이 그냥 거품이 아니다. 맥주를 얼린 거라고 주인언니가 강조함.

     

     

    언니가 무척이나 기대했던 문꼬치. 역시 줄은 길었고, 맛은 기대할 만 했다.

    불맛이 나는 것이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오목대에도 갔다.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와, 정말 좋았다.

    왕모기에게 엄청 물렸지만, 물린 것도 모르고 오래 내려다봤다.

     

     

    언니와 내가 최근 동시에 빠진 빌리어코스티의 소란했던 시절에를 들었다.

    한옥마을 어디에선가 야광벌을 닮은 장난감이 솟아올랐다 내려앉고 있었다. 

     

     

     

    익숙한 가맥집 가는 길. 시원한 오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언니가 미리 준 생일 선물. 가볍고 튼튼하다.

     

     

    그립습니다.  

     

     

    너무 배가 불러 번갈아가며 나가서 산책을 하고 왔다.

    언니가 산책을 하는 동안 맥주 한 병을 더 꺼내 마셨고,

    나는 산책하면서 이어폰으로 소란했던 시절에를 한번 들었다.

     

     

    면 배는 따로 있는 것 같아. 언니가 사발면을 사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 남자 넷이 계속 쳐다봤다.

    나는 봤지. 그들의 입모양을. 여자 둘이 저리 많이 마신다.

     

     

    한옥마을에서 우표도 샀다.

    우표에 숭례문, 수원화성, 해운대 동백섬, 도담삼봉, 홍도, 경주 첨성대,

    남원 광한루, 강릉 경포대, 한라산 백록담 그림이 있었다.

     

     

    숙소에 와서 한 캔 더! 그리고 한 캔 더!

    그런데 마지막 캔은 한 모금씩 마시고 바로 뻗었다.

    덕분에 조식도 못 먹고. 맥주 욕심을 버립시다.

     

     

     

    숙소는 번화가에 있는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이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침대가 편해서 언니도 나도 푹 잤다.

     

     

    해장은 유명한 베테랑 칼국수로.

    이번 여행에서는 가맥집 빼고는 모두 새로운 음식들을 먹었다. 아, 뿌듯.

     

     

    만두도 시켰다.

     

     

     

     

     

    연두연두. 경기전. 이년 전의 화장실이 없어졌다. 화장실 위치가 달라졌더라.

    커플 천국, 경기전.

     

     

    한옥마을 소세지집에 있는 살신성인의 소세지.

    너무 마음에 들어 결국 사진 찍었다. 완전 마음에 듬. 소세지는 사먹지 않았다.

     

     

     

    청년몰에도 갔다. 낮술 파는데서 낮술 마시고 싶었는데,

    주인장이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갔다는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다.

    돈 벌어 뭐하나. 이렇게 축의금으로 다 날리는 것을, 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버스 타고 먹은 길거리아 바게트 버거. 와, 진짜 맛있다. 두 개 안 샀으면 어쩔 뻔 했는지.

     

     

       전주에서 먹었던 사진을 죄다 찍었지만, 하나 안 찍은 게 있다. 모주 아이스크림.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이랑 너무나 달랐다. 비주얼도 가격도. 인터넷에서 본 건 그냥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모주를 뿌려 주는 거였는데, 우리가 마주한 아이스크림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일단 컵은 컵모양의 과자. 멋부림이 너무 심해 보였다. 주인 언니가 아이스크림을 준비하는데, 발견한 가격표. 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언니, 여기는 삼천원이에요! 우리의 불신은 점점 쌓여갔다. 주인 언니가 불이 나오는 화력 세기의 무언가를 아이스크림에 희리릭 뿌리며 말했다. 이건 초코예요. 내가 한번 더 물었다. 초코요. 저는 보기와 다르게 단 것을 싫어한다구요! 속으로 외쳤다. 주인 언니가 옆에 있는 커다란 갈색 덩어리를 대패로 밀더니 말했다. 이걸 토핑으로 얹어 드려요. 한번 먹어 보세요. 언니와 나는 별로 먹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먹었다. 맛있죠? 둘 다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그 과자 컵에 아이스크림을 얹히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주 따위는 뿌려주지 않았다. 언니가 물었다. 저희 모주 아이스크림 시켰는데요. 아, 아이스크림 자체가 모주를 넣어 만든 거예요. 아, 피 같은 육천원이 날아가는 구나. 우리는 어두운 표정으로 거리를 나섰다. 그런데 한 스푼 한 스푼 먹기 시작하니 이게 참 묘했다. 모주 맛이 강렬하게 났고,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게 느껴졌다. 당분이 들어가니 무거운 가방도 갑자기 막 가벼워졌다.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과자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스푼까지 씹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아, 내가 그 경이로운 모주 아이스크림 사진을 찍지 않았다니.

     

       칠월의 부천, 팔월의 제천, 시월의 부산. 좋은 날들만 남았다, 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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