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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테마기행, 설국
    티비를보다 2014. 3. 15. 21:23

     

       일본행의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소설가 나카자와 케이 씨와의 만남이다. 그녀와는 2000년 5월(아오모리)과 2002년 11월(원주) '한일문학작가회의'에서 두 번 만났는데, 원주에서 만났을 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눈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말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일본 동북부의 아키다나 야마가타로 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정말 눈 때문에 갈 거라면 말이다.

    - 윤대녕, <눈의 여행자> 작가의 말 중에서

     

     

        다시보기 리스트를 뒤적거리다 EBS 세계테마기행 일본 설국 편을 봤다. 윤대녕의 책에서 본 것처럼 홋카이도만큼 혹은 더 많은 눈이 내리는 지역이었다. 혼슈 지방의 나가노, 니가타, 기후, 아오모리. 처음에는 겨울을 보내며 눈 구경이나 실컷하자는 마음이었는데, 다큐를 보면서 여행을 소개하는 단국대 이권희 교수의 행동이 재미났다. 무척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인 것 같았다. 북알프스 눈밭에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설피 한 짝을 잃어버리고는 내일 찾으러 와야겠다고 허허 웃고, 마츠오야 온천마을에서 열린 신랑 던지기 대회에서 육중한 몸을 날려 새신랑 친구들을 녹다운시키고, 만선한 방어잡이 배에서 커다란 생선을 집어 올리려다 넘어질 뻔 하고. 혼자서 보다가 소리내서 웃었다. 학교 강의도 재미나게 하실 듯.

     

       일본 설국 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탓에 탄생한 난쟁이 모자 같이 뾰족한 지붕이 나오고, 그 오래된 가옥에서 먹는 담백한 생선 화로구이도 나온다. 노리노 마을에서는 겨울 바람과 햇빛에 삶은 무를 말렸다 얼렸다 반복해서 저장 식품으로 만들어 일년 내내 먹는다고 한다. 그 무를 만드는 아주머니께서 제작진과 헤어지면서 한 인사는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요'였다. 동글동글한 미소를 지으시는 아주머니였다. 니가타에서 이권희 교수는 온천수에 띄운 뜨끈뜨끈한 사케도 마시고, 5잔에 500엔 하는 사케 자판기에서 소금과 함께 사케를 마셨다. 술에는 단맛과 매운맛은 있는데, 짠맛만 없어서 소금과 함께 마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린 눈으로 눈산을 만들어 술을 저온저장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방어잡이배에서 내려서는 갓 잡은 생선을 숯불에 구워 한마리 통째로 간장을 솔솔 뿌려 육고기 먹듯 뜯어 먹기도 했으며, 오래된 난로가 있는 옛날 기차에서 구운 오징어를 찢어 먹기도 했다. 파우더 눈이 내리는 산의 정상에서는 너무 추워 나무 위에 눈이 그대로 얼어버린 얼음나무도 구경했다. 이권희 교수는 이런 추위는 생전 처음이라고,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나무는 봄이 되면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의 나무가 된단다. 전기 없이 호롱불로만 밤을 밝히는 깊은 산 속의 고요한 료칸에서 노천온천을 하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가마우지 새로 은어잡이를 하는 우쇼를 만났고, 근사한 풍경을 바라보며 노천족욕을 하며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의 실제인물이기도 했다. 이권희 교수는 그 분들 집에서 멧돼지 고기로 만든 요리를 얻어 먹었다.

     

        이렇게 겨울이 간다. 제주에는 벌써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는데. 또 다른 어딘가에선 봄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만큼 빨리 늙어가는 기분이다. 언젠가 정말 추운 곳에서 여행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운 지방에는 2월에도 한겨울처럼 눈이 펑펑 오는구나.

     

     

        나는 우선 니가카로 갔다. 거기서 하루 묵은 다음 기차를 타고 겨울 해안선을 따라 아키타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보름 동안 나는 눈이 퍼붓는 곳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한 다음 나머지 보름 동안은 오직 쓰기에 매달려 초고를 완성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2월의 일이었다.

    - 윤대녕, <눈의 여행자>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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