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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우의 여름
    티비를보다 2013. 10. 28. 10:26

     

     

      

        은행 갈 일이 있어 월요일 연차를 냈다. 동생에게 미리 말해두지 않아 알람을 끄면서 계속 자는 나에게 동생이 지금 6시 40분이야! 일어나! 한다. 연차야, 말하고 잤다. 일어나니 7시 40분이다. 어제 동생이 사온 새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고구마 하나와 닭가슴살 하나로 아침을 때웠다. 은행에 다녀왔다가 마트에 가서 미니 믹서기를 사기로 했다. 김민준이 <나 혼자 산다>에서 작은 믹서기로 쥬스를 만들어 먹었는데, 사이즈가 아담한 것이 마음에 딱 들었다. 검색해보니 가격도 저렴하다. 어제 보고 자려다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못봤던 드라마로 월요일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연우의 여름>.

     

        교통사고 때문에 엄마의 일을 대신하게 된 연우. 연우는 인디밴드 보컬이다. 청소일을 엄마가 나을 동안 대신 맡게 되었다. 그 회사에서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된다. 동창은 사내 아나운서. 친구는 연우에게 자기 대신 소개팅에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연우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거절을 못하고 소개팅에 나간다. 연우가 아닌 지완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 약속장소 앞에 연우는 지완의 옷과 구두와 귀걸이를 하고 어색하게 서 있다. 윤환은 정장을 입고 백팩을 메고 쭈빗하게 서 있다 연우, 아니 지완에게 온다. 윤환은 예약을 하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대기 시간이 길다. 윤환은 지완에게 예약을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완은 괜찮다며, 배가 고픈 것보다 발이 아프다고 말한다. 고기집 밖에 대기해 있는데, 지완이 조금 덥네요, 하면서 겉옷을 벗는다. 목 위로 흐르는 땀을 본 지완이 우리 가요, 한다. 두 사람은 결국 한강 둔치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윤환은 종이를 꺼내 지완의 발 옆에 둔다. 지완은 높은 하얀색 구두에서 발을 빼내 종이 위에 맨발을 올린다. 그리고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따라가느라 좀 힘들거든요. 그냥 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쉬어요, 우리.

     

       너무 드라마 같은데, 상황도 그렇고, 대사들도 그렇고. 그런데 좋다. 공감이 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선 두근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마지막에 지완은, 아니 연우는. 이제 연우다. 연우는 자신의 멜로디에 솔직하고 귀여운 가사를 완성한다. 제목은, 제 이름은요. 노래 중간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화면에는 계속 연우가 노래하고 있지만, 알 수 있었다. 윤환이 왔다는 걸. 카밀 핸드크림. 우쿨렐레. 수첩. 크레딧을 보니 정바비 음악이었다.

     

        이제 나가서 은행에 갔다가, 영화 한 편을 보고, 책을 좀 읽어야지. 새로 읽기 시작한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그 무렵, 나는 남을 대할 때, 모든 것을 숨기거나 모든 것을 털어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밀린 구몬 일어도 하고, 마트에 들러 콘센트와 믹서기를 사고, 동생의 수선 맡긴 옷도 찾고. 핸드크림과 헤어팩도 사야겠다. 창덕궁 후원에 가고 싶었는데, 월요일은 쉬는 날이네. 어제 <결혼의 여신>이 끝났다. 억지 설정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우연, 주인공의 답답한 성격 때문에 욕하면서도 계속 봤는데, 뭔가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이 드라마를 계속 본 건 첫회에 나왔던 제주도 풍경 때문이었다. 마지막 회에 예상대로 제주도가 나왔다. 억새풀이 만연한 제주. 시간이 많이 흘러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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