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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의 이야기 - 머니볼, 50/50
    극장에가다 2011. 12. 6. 22:46
         


       주말 내내 뒹굴다가 일요일 저녁에 청량리에 영화를 보러 갔다. N언니를 만난 날, 언니는 라오스에 꼭 가보라고 했다. 아직도 거길 생각하면 설레인다고, 아직도 라오스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지금까지 언니가 다녀온 여행지 중에 최고라고 했다. 언니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 창에 '라오스 여행'이라고 치니, 모두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뿐이었다.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언니는 언젠가 삿포로도 꼭 한번 가고 싶다고 했다. 겨울의 삿포로. 삿포로의 골목집 어느 이자까야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조용한 연기. 그 딱 한 풍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한 건 언니였나, 언니가 언젠가 들었던 라디오의 유희열이었나. 일요일에 <머니볼>을 봤고, 나도 삿포로 골목길 이자까야의 풍경을 봤다. 이거면 이 영화는 됐다고 생각했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브래드 피트가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딸에게 기타를 사 주기 위해 기타가게에 들러 딸의 노래를 들은 순간이었다.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죠.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 봤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속도를 늦춰요. 그리고 멈춰요. 안 그러면 내 심장이 터져 버릴 거예요. 왜냐하면 너무나 그래 그건 내가 아닌 게 되잖아요." 내겐 이게 <머니볼>의 삿포로 겨울 뒷골목 풍경이었다. 잔잔하고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왔다. 늘 하던 실수를 또 했다. 집 쪽이 아니라 경희대 쪽으로 걸어 간거다. 청량리에서 영화를 보고 걸어오면 늘 하던 실수다. 늘 똑같은 이정표를 보고 나서 아차차, 잘못 왔구나 하고 돌아섰다. 역시 속도를 늦춰야 한다. 




        <머니볼>을 보고 나니, 한동안 증발했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오늘은 퇴근을 하고 시간에 맞춰 <50/50>을 보러 갔다. 케이에프씨에서 트위스터를 사고, 콜드스톤에서 아메리카노를 샀다. 평일 영화표는 팔천원이구나, 표를 보고 알았다. 영화를 보는데, 조셉고든레빗이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친구는 그걸 이용해 여자를 꼬시자고 한다. 같이 사는 애인은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에는 같이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병원의 부정적인 기운을 받고 싶지 않아서란다. 그러던 중 잔잔한 음악이 조용히, 여러번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오늘 지하철 안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야기에 위안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거라는 걸. 회사에서 나는 매일 서른 통 이상의 메일을 받는데, 그 메일 하나하나에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이야기가 있다. 매일 지하철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본다. 혹은 듣는다. 오늘은 오뚜기가 되어가는 어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엄마아빠 생각을 했다. 매주 목요일 신촌에 가서 일곱 개의 이야기를 듣는다. 주말에는 티비 앞에 앉아 수십 개의 이야기를 보면서 낄낄거린다. 술을 마시며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커피를 마시며 두 개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대한민국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한 극장 안에 앉아 저 멀리 미국에서 날라온 이야기를 보며 울고 있다. 힘들었던 월요일과 화요일을 여기서 위안받고 있다, 라는 생각이 터무니없이, 문득, 새삼스럽게 들었다. 고마웠다. 할리우드에서 날라온 이 이야기가 나를 좀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후배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니, 분명 이 아이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하지?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저 생각나서. 이름이 있길래, 라는 대답이었다. 아, 뭔가 미안하고 다행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래, 우리 한때는 그런 사이였는데, 이제는 연락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이라니. 내일부터 추워진단다. 이번 주에 눈이 올 지도 모르겠다. 준비하고 있어야지. 오늘 나는 한 소설가를 새삼스레 사랑하게 됐다. 그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스르르 움직였다. 그의 새 책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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