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서재를쌓다 2009. 8. 30. 20:3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예담


    그래도, 날, 사랑해 줄 당신에게 

        소설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그 순간 이 소설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못 생긴 여자라니요. 너무나 못 생겨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쳐다보게 되는 여자라니요.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남자까지 쳐다보게 되는 여자라니요. 이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나,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이건 너무 과장이 심하잖아,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판타지야, 라고 생각을 했지요. 소설을 마지막 장을 덮고 일주일이 지났어요. 그동안 나는 이 소설과 여러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그동안 나와 테이블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많은 사람들 중에,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요. 거의 모두가 그랬죠. 그제서야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니구나, 생각했지요. 내 곁에 많은 사람들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외모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니까요. 심지어 나도 그런 사람이지요. 잘난 것도 없으면서. 그러다 또 다시 박민규의 소설 중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지요. 소설집 <카스테라>에 있던 문장이었어요. "이십대엔 누구나 이름과 외모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며,"

        나는 나이듦에 대해서 말하겠어요. 이 소설을 읽던 중에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왔지요. 박민규 작가는 예의 독특한 선글라스를 낀 채, 앉아서 이야기를 하니 정말 '마흔 둘'이 된 거 같다면서 일어서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그 날의 여러 말들 중에 가장 잊지 못한 말은 이거예요. "믿기지 않겠지만, 언젠가 마흔 두 살의 나이가 됩니다." 이런 말도 있었어요. 자신의 팬이 되라는. 누군가의 팬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팬이 되어야 한다고. 잘난 척 해도, 모두들 별 볼 일 없으니까요. 마흔 두 살이구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은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소설을 쓴다고 했어요. '믿음'이 있기 때문에요. 소설을 선물해주고 싶은 그와 같은 수만 명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라고 하셨지요. 늦기 전에.

         그러니까,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요. 어릴 적에 생각했던 외모의 아름다움과 지금의 아름다움이 다르다고 이야길 하셨지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난 마흔 두 살이 되려면 아직 십 년이 넘게 남았지만, 내게도 스무 살에 생각했던 사람의 아름다움과 지금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달라요. 이게 바로 나이드는 게 행복한 이유예요. 난 성숙한 인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스무 살때보다는 현명해졌지요. 스무 살때보다는 상처를 덜 받는 인간이 되었지요. 난 그때 상처투성이었거든요. 사람에게 100의 상처가 매년 주어진다면, 열 아홉살과 스무 살의 나는 100의 상처 중에 100을 고스란히 상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스무 다섯 살의 나는 조금 달라졌지요. 서른 살, 지금의 나는 75정도만 상처받는 사람이 되었어요. 25는 그냥 흘러보낼 수 있어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수 있어요. 난 75의 튼튼한 인간이 되었지요. 그게 눈가의 주름살이 늘어도, 체력이 떨어져 밤새 술을 마실 수 없어도, 행복한 서른 살의 나예요. 난 25를 버릴 수 있으니까요.

        소설은 못 생긴 여자와 (세상 사람들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예요. 그 때의 그들은 켄터키 치킨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며, 호프Hope를 꿈꾸죠. 라디오에 어떤 음악을 신청하고, 어떤 음악을 함께 듣죠. 테이블 밑에서 손을 마주잡고 쪼물딱거리며 행복하다, 생각하죠. 야채를 듬뿍 넣은 안주를 만들고, 중국집에 요리를 시켜놓고, 술을 마시죠. 서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주고, 서로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해주고. 눈이 내리는 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컴컴한 밤 거리를 걷으며 잊지 못할 밤을 만들기도 하죠. 내가 예전에 읽었던 박민규 소설과는 다른 소설이지만, 결말의 갑작스런 신파가 당황스러웠지만, 서른의 여름, 이 소설을 읽은 건 다행이예요. 마흔 두 살의 박민규는 몇 년이 지나서야 이 소설을 쓸 수 있었고, 서른의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같이 들어있던 씨디를 듣지 못했네요. 이건 다음 번에 읽게 될 때 함께 들을래요.

        아, 그 때 작가와의 대화 때 독자들이 낭독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하얗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온 커트머리의 귀여운 여자분이 '세상 사람들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죠. 난 그 여자분의 목소리가 너무 고와서, 그 떨리는 음성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 여자분은 박민규 작가님에게 이 소설이 자신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얘길 했죠. 난 그 귀여운 여자분에게 감사를. 작가님께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 여자분의 떨리는 음성이 내겐 위로가 되었거든요. 정말이예요. 우린 모두 달의 뒷면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누군가 보이지 않는 그 달의 어두운 뒷면을 다독거려주면, 나도 모르게 따뜻한 눈물이 솟아지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못 생긴 외모보다 잘 생긴 마음을 첫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해요. '행복하세요.' 이건 작가님이 우리들에게 해 준 말이예요.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