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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사는 세상
    티비를보다 2009. 2. 8. 02:11

       우리는 짧은 지름길을 걷고 있었다. B가 말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렇게 헤어질 수 있느냐고.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한다 말했던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어떠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서는 바이바이, 해버렸다고. 우리는 그래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송혜교는 어떻겠느냐고. 얼마나 힘들겠냐고.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이건 B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세사>의 송혜교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B는 말했다. 왜 현빈이 송혜교랑 헤어진지 알겠어요? 왜 내가 그 자식이랑 헤어지게 된 건지 알겠어요?
     
       나는 그 때 술 마시는 일에, 사람 만나는 일에 바빴던 월요일과 화요일을 보내느라 애청하던 <그세사>를 여러 회 놓쳤다. 나는 B에게 내가 안 본 사이 그렇게 사랑했던 둘이 어떻게 그렇게 한 순간, 쉽게 헤어져버렸냐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놓쳤던 회들을 챙겨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술 마시는 약속이 없고, 사람 만나는 약속이 없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놓쳤던 회들은 그냥 두고, 당일 방영하는 회를 닥본사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헤어진 후의 두 사람의 마음만 알 뿐. 상황만 알 뿐. 현민이 그렇게 귀엽고 예뻐했던, 그야말로 호주머니 안에 넣어두고 다니고 싶어했던 송혜교에게 어떻게 이별을 고했는지 몰랐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봤다. 놓쳤던 <그세사>. 둘이 어떻게 이별했는지. 현빈이 송혜교에게 어떻게 이별을 고했는지. 그 날은 아주 슬펐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동생과 함께 보면서 둘이 나란히 앉아 엉엉 울었다. 그리고 놓쳤던 회들을 거슬러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드라마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였다. 드라마니까. 내가 두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까. 현실과는 다르니까. 이별의 순간은 아주 미묘하게, 그리고 천천히 오고 있었다. <그세사>의 현빈과 송혜교는 보통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아니었으니까. 둘 다 예쁜 집에서 살고 있는 드라마 속 인물이긴 했지만. (심지어 조금 궁핍한 설정으로 나왔던 옥탑방 현빈의 집도 예뻤다고.) 내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져도 아닌 척 마음 좋은 사람인양, 외롭고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상대방에 비해 모자란 내 상황이 화나고, 짜증나고, 그렇게 표출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캐릭터였으니까. 바로 나였으니까. 너이기도 했고.

        토요일. 오늘은 맥주를 잔뜩 사 놓고 <그세사> 마지막 회를 봤다. 마지막 회 역시 내가 놓쳤던 시간. 해피엔딩. 15회도 다시 봤다. 현빈이 송혜교 집에 몇 달만에 나타나 계속해서 입을 맞추는 장면. 아, 난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 심장이 오그라든다. 이건 이별을 경험한, 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꿈꾸는 장면이니까. 나도 한때 꿈꾸었던 장면이었으니까. B는 그랬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현빈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B 역시 꿈꿨던 장면이었을 거다. 응. 그랬을 거다. 그러니까 해피엔딩. 이별은 다시 사랑으로 이어졌다. 이건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던 B가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애요. 이제는. 그 아이가 왜 날 떠났는지. 그건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해된 일이라고 B는 덧붙였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야만 이해되는 사랑의 기묘한 감정들. 누군가를 다시 만나야만 생각나는 어떤 순간들. 그래서 아프기도 하고, 내가 성장하기도 하는. 연애. 아, 연애. <그세사>를 보는 내내 왜 그렇게 시청률이 안 나오는지 속상했었다. 이렇게 괜찮은 드라마를 안 보고, 다들 이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에 귀기울이는지.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송혜교를 포함한 여자 캐릭터들이 모여서 수다떠는 장면들. 그렇게 서로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었던 이들이 친구가 되어가는 장면들. 새초롬했던 송혜교가 들뜬 표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이야기를 누구보다 재미나게 들어주던 작가와 배우, 조연출. 이제 친구가 되어버린 사람들. 난 그런 순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설렌다. 사랑이야기보다 더. 자, 건배. 우리도 그들처럼,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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