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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신검시관과 CSI
    티비를보다 2008. 8. 1. 23:06
    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사실 난 <종신검시관>의 구라이시가 별로였다. 모두가 칭송해마지않는 그야말로 종신검시관, 구라이시였지만 내게는 독불장군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 책에는 8가지 사건들이 들어있다. 모두 종신검시관, 구라이시가 등장하는 단편들. 구라이시는 현장에 소리없이 쓰윽 나타나 단번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린다. 그는 길게 말하는 법이 없다. 이 사건은 자살이네. 이 사건은 타살이야. 이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지. 그는 사생활에서는 난잡하지만 일에서는 완벽하다. 완벽주의자. 실수는 절대 없다. 의미를 담고 일부러 실수하지 않는 한. 그는 독보적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질투하거나, 존경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이 일을 한다거나, 힘을 합치고 머리를 합쳐 사건을 처리해나간다기보다 혼자 완벽하게 쓰윽 둘러보곤 정답은 이것이야, 이렇게. 동료들 속에서 섞이지 않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람, 나는 그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남은 땀을 뻘뻘흘리며 찾아내는 것을 뒷짐지고 쓰윽 둘러보면 정답불이 딩동 들어오는 사람. 나는 왠지 그가 미웠다. 구라이시, 당신은 너무 완벽하기만 해.

       모르겠다. 모두들 따뜻하다고 칭찬하는 책을 나만 왜 삐딱하게 읽어냈는지. 내 마음이 삐딱한건지. 늦은 밤, 꽉 막힌 동대문즈음의 버스 안에서 이 책을 마쳤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얼른 집에 가서 CSI를 보자고 생각했다. 모두가 협동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치명적인 실수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들이 즐비하고,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상처받고,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화려한 라스베가스의 이야기. 집에 돌아와 얼른 CSI 라스베가스 시즌 1의 첫회를 봤다. 라스베가스 이야기에 그렇게 열광했으면서 이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건들과 처음으로 맞닥뜨렸는지 몰랐다. 나는 이제까지 최근 시즌만 봤으니까.

     
       시즌 1, 첫 번째 이야기에서 라스베가스팀은 동료를 잃는다. 시즌 1,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중에 미결 사건으로 그리썸 반장과 소름끼치게 대적했던 범죄자와 마주한다. (이 특수분장사가 첫 번째 이야기에 용의자로 등장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썸 반장님은 훗날 일은 아무 것도 모르고 친절하게 '그리썸입니다' 인사하고)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리썸은 반장이 되고, 사라가 등장한다. 그리썸과 캐서린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먼저 그리썸의 이야기. 거짓말을 하는 것같은 용의자 때문에 오리무중인 워릭에게.
     
        

       워릭은 승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썸의 저 충고덕분에 워릭은 증거는 찾았지만 자신에 집중하는 바람에 끔찍한 실수를 해 버렸다. 그리고 이건 캐서린의 말. 캐서린은 엄마때문에 할 수 없이 지원했다는 이제 일을 시작한 홀리에게. 


       홀리는 그 날 죽었다. 첫 번째 사건도 해결 못한 채. 현장을 다시 찾은 강도의 총에 맞아서. 그녀는 첫 날이였지만 CSI답게 충분한 증거를 남겼고. 라스베가스팀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홀리의 죽음에 자책했다. 이게 내가 CSI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떤 날은 통쾌하게 사건을 마무리짓고, 어떤 날의 사건은 미결로 남아 오랫동안 요원들을 괴롭히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범죄에 그들 또한 노출되고 아프고 힘들고 화내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게 CSI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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