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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토록 뜨거운 순간 - 그러니까 우리의 스무 살 이야기
    극장에가다 2007. 12. 28. 13:21
       <이토록 뜨거운 순간> 전체적으로 과잉되어 있어요. 제목도 그렇고, 감정들도 넘쳐나죠.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의 스무살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을요.


    '에단 호크'스러운.

       딱 '에단 호크'스러운 영화인 것 같아요. 우리가 기억하고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 <청춘 스케치>와 <비포 선라이즈> 속의 모습들이잖아요. 젊고, 반항적이고, 타협하지 않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촉촉한 눈을 가진 휘청휘청 위태로운 모습. 다른 많은 영화들 속의 그는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서 에단 호크는 스무살 윌리엄의 아버지로 등장하는데, 아무리 그가 나이가 들어다지만, 아무리 그의 주름살이 흠뿍 패였다지만, 아무리 극 중에서 어린 나이에 사고를 쳐 윌리엄이 태어났자지만 그는 겨우 삼촌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구요. 찾아보니 주인공 윌리엄을 연기한 마크 웨버는 80년생, 에단 호크는 70년생. 실제로는 10살 차이밖에 안 나잖아요. 에이.


    미국판 '봄날은 간다'

       영화 보면서도 생각이 들었는데, 필름 2.0을 보니깐 미국판 <봄날은 간다>라는 표현이 있더라구요. 정말 이 영화는 미국판 <봄날은 간다> 같아요. 이야기의 구조도 거의 비슷해요. 첫 눈에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 함께 살게 된 남자와 여자,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남자와 여자, 사랑이 버거워진 여자, 사랑이 지속되는 남자, 남은 사랑에 집착하게 되는 남자, 남은 사랑마저 지겨워진 여자, 그리고 남자의 성장.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의 나이가 <봄날은 간다>처럼 그리 많다는 게 아닌 거예요. 똑같이 전의 사랑에 데인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는 <봄날은 간다>의 은수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해주죠.

       남자도 <봄날은 간다>의 상우 같아요. 상우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혼자가 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사랑이 끝난 뒤에 상우에게 가장 많은 위로가 되어 주는 대상도 그들이였구요.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서도 그래요. 윌리엄은 가족에게 이미 깊은 상처를 받고 있었어요. 사라도 물론 그랬지만요. 어릴 때 아빠와 헤어져 살게 되고, 아빠는 곧 재혼을 했죠. 아빠의 부재는 소년 윌리엄에게 큰 상처가 되요. 그래서 열렬히 사랑했던 이 뜨거운 순간이 지나가고, 어찌할 수 없이 칼날같이 뜨거운 상처의 시간이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소년은 아버지를 찾아가요. 왜 나를 버렸냐고, 왜 다시 찾을 거란 약속을 지키지 않았냐고, 왜 이렇게 사랑이 아픈거냐고, 어떻게 내가 이 지독한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거냐고 다그쳐요. 그러면 삼촌 같은 외모의 아버지, 에단 호크는 여전히 촉촉한 눈으로 아들에게 말하죠. 사랑의 아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거란다. 사랑을 포기한 사람은 사랑할 가치가 없는 거란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아들에게요.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딱 한번,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커다란 위로가 되요.


    '과잉'되어 있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과잉되어 있다고 했잖아요. 사랑의 감정도, 아픔의 상처도. 그래서 적어두고 싶은 대사들도 과잉되게 많았고, 이어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도 과잉되게 많았어요. 어쩌면 조금은 무뎌지고, 식상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반복되어지는 이야기잖아요. 청춘의 사랑이야기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던 건 대사와 음악 때문이였어요. 이제는 실수투성이로 보여지는 그의, 나의, 우리의 스무살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을 좋은 대사와 좋은 음악이 매끄럽게 이어가줘요.

       정말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요? 다시 사랑에 빠지면 저런 스무살의 실수는 하지 않을까요? 예전의 저는 윌리엄처럼 사라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잠시 떨어져서 시간을 가지자는 말을 너를 더이상 단 한번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로 이해하고 윌리엄처럼 행동했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시간과 공간에서 떨어져서 보니 그건 정말 잠시만 떨어져있자는 말이였어요. 모든 시간들이 다 좋을 수 없으니, 너를 분명 사랑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는. 정말 그 단어, 그 문장 그대로였던 거예요. 다시 사랑을 한다면 다신 윌리엄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할 때는 뜨겁게, 헤어지고 나서의 찢어지는 아픔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꼭 사랑에 빠진 순간에 헤어지는 순간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사라와 윌리엄도 그랬죠. 저도 그랬어요.


       이 영화는 에단 호크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해요. 그렇다고 인물들이나 이야기 자체가 그렇다기 보다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감정들이 그렇다고 해요. 만약 저도 촉촉한 에단 호크라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그 감정들을 다 잊어버리기 전에 이런 이야기의 소설, 이런 이야기의 영화를 만들어 놓고 싶을 거 같아요. 더 잊어버리기 전에요. 그러니까 이건 에단 호크의 스무 살의 이야기이고, 저의 스무 살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마도 당신의 스무 살의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이기도 할 거예요. 사랑, 청춘. 반복해도 끝이 없네요. 여전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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