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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당신의 그 촉촉함 때문에
    서재를쌓다 2007. 12. 27. 10:33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거꾸로 읽어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청춘의 문장들>도 천천히 다시 읽고. 그럴려면 2005년에 출간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그보다 3년 전에 출간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먼저 읽었어요. 순전히 '7번 국도'라는 닉네임을 쓰신 분이 달아주신 댓글 때문에요.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단편집이지만 눈물 펑펑 쏟으며 읽었던 기억이...' 이 댓글이요. 예전에 곡예사님이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를 추천해주시면서 '울어버릴 지도 몰라요' 라는 문장 하나에 어떻게든 그 책을 빌려보려고 애썼던 것처럼 저는 '눈물이 날지도 모르는' 소설에 맥을 못 추리는 것 같아요. 네. 그리하여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읽었고, 7번 국도님이 쓴 댓글처럼 저도 울어버렸어요. 좋더라구요. 정말.

       어제 지하철에서 마지막 장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 일부러 마지막 단편은 남겨뒀어요. 이 소설집의 마지막을 시끄러운 지하철 안에서 읽어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는 일부러 빙 둘러서 집으로 왔어요. 평소보다 조금 더 걷고 싶었거든요. 그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늘 뻔했었는데 어제는 가보지 않은 길로 일부러 돌아서 와 봤어요. 큰 도로를 끼고 있는 길은 한적했어요. 아이가 아픈지 등에 업고 종종걸음으로 서로 씩씩거리며 택시를 잡으려는 부부가 제 옆을 지나갔고, 커다란 커피 잔을 들고 조잘거리며 나란히 속도를 맞추는 여자 아이 둘도 지나갔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자기 직전 마지막 단편을 읽었어요. '캔디'같은 노래는 눈물나니깐 다신 부르지 말라는 시설 출신의 친구를 가진 아이 이야기였는데 아이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죠.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고. 아, 정말 좋다, 라면서 잠이 스르르 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제일 마지막 장, 작가의 말을 읽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예요. 좋았던 소설의 작가의 말을 마지막에 읽는 일은.
     
       잠이 들면서 왜 이렇게 이 사람의 글이 좋을까 생각해 봤어요. 폭신폭신한 베개 하나를 꼭 끌어안고 잠에 빠져 들기 직전에 생각난 단어는 이거였어요. 촉촉함. 촉촉해요. 이 사람의 소설은. 5.18을 다룰 때도, 학교 폭력을 다룰 때도, 낙태를 다룰 때도, 학생 운동을 다룰 때에도. 그의 소설에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아픈 상처가 많은 사회 안에 촉촉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담겨져 있어요. 5.18 신문기사를 반복해서 읽어내려가면서 그 곳에 있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의 땅에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려는 작은 어깨의 아빠가. 보랏빛 꽃비가 내리는 운동장, 편견의 벽 앞에서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말자고 말하는 가여운 친구가. 노랗고 빨갛고 푸른 연등이 펄럭이는 아기부처님 오신 날의 한가운데에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자식에게 용서해달라며 그 둥근 빛들을 올려다보는 눈이 젖은 어미가. 유리판을 검게 그을려 일식을 보며 그 둥근빛의 첫사랑을 고백하는 어린 아이까지. 그들은 짧은 단편 속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가지만 모두들 촉촉하게 젖어 있어요. 그래서 이 짧은 단편이 끝나고 나면 아픈 마음들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 전체가 촉촉해질 것만 같은 마법의 문장들을 그에게서 하나씩 선물받게 되요. 그게 좋아요. 그 촉촉한 감수성이.
     
       자전적인 '뉴욕 제과점'을 읽으면서는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만난 그를 일부러 떠올리지 않아도 자꾸 생각이 났어요. 조그맣고 삐그덕 소리가 나는 무대 위에 앉아 저한테는 지금 현재가 제일 중요해요, 어제 일도 금방금방 까먹는데요,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소설 쓰다가 막히면 무조건 자요, 먹는 건 상관없어요, 예전에는 나도 사전 찾아가면 소설 썼으니 독자들도 어려우면 사전 찾아가면서 읽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더 펼쳐지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아직 어린 제 아이가 제 소설을 꺼내서 몰래 읽는 거예요, 라고 수다를 떨던 모습이요. 그리고 헷갈리는 거예요. 이게 소설에서 읽은 부분인가, 그 때 그가 말한 이야기인가. 분명 찾아보면 소설 속 문장들인데 꼭 그 날 그가 자신에 관해 말한 이야기들 중 일부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거예요. 그의 소설들에서는 그 날 잠깐동안 보았을 뿐이지만 그 모습이 진하게 박혀져 있었거든요. 그 촉촉한 감수성이요.

       단편의 제목들을 쭉 읽으면 이 소설들이 얼마나 촉촉한지 알 수 있어요. 마치 시어들 같거든요. 역시 시로 등단하셔서 그런건지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이렇게 시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우리들에게는 비밀인 것처럼 하구요. 이 소설집의 목록들은 모아놓으면 마치 한 편의 시 같거든요. 어쩌면 '느'를 붙이느냐 빼느냐를 긴 시간을 두고 고민했을 아버지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가 그렇게 촉촉한 감수성을 지닌 것은요.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껏 희망을 갖고 밀고 나가거라. 어차피 人生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냐'라고 써놓은 뒤,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한 아버지 말이예요. 정말 그의 아버지인지는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뉴욕제과점
    첫사랑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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