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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뷰티풀 게임 -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무대를보다 2007. 11. 29. 10:49


       여기 한 때 초록빛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최고의 팀이였던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축구팀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최고의 팀이였어요. 각자 살아온 환경도 생각하는 가치관도 달랐지만 이들은 온전히 축구 아래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오직 달리는 것, 내 곁에 패스를 해 줄 니가 있다는 것, 너의 패스를 잡아 골을 넣을 수 있는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였지요.

       우선 선수들을 소개할께요. 우선 벨파스트의 주장 존이예요. 존은 정말 축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아이예요. 이 세상은 모두 축구에 의해서 돌아가는 줄 아는 녀석이예요. 그래서 사랑에도 쑥맥인 녀석이예요. 여자친구는 늘 존에게 축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달라고 하지만 사실 여자친구도 그라운드 위에서의 존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해요. 순진하고 순수해서 축구와 친구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녀석이예요.

       그리고 토마스가 있어요. 축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녀석이예요. 아니, 축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당장 이 축구를 때려치우고라도 꼭 이 놈의 빌어먹을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예요. 이 녀석의 눈에는 항상 분노가 서려 있어요. 평화로운 아일랜드를 식민지 삼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영국놈들을 어떻게든 해야한다고 소리를 치고 다녀요. 그래서 늘 깔끔한 영국풍 셔츠를 입는 큰 키에 귀공자같은 얼굴로 그건 조상들의 일일 뿐이고 우리는 그 일에 상관없이 잘 지내야 한다고 미소짓는 프랭크와 마주칠 때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요. 그 놈과 자신이 한 팀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죠.

       또 다른 친구들, 다니엘과 컬리도 있어요. 다니엘은 늘 무언가를 훔쳐 와서는 언젠가 꼭 부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를 치죠. 이 녀석은 축구에 별 관심도 없는 듯 하고, 사실 큰 부자가 되지도 못할 것 같긴해요. 그리고 컬리요. 우리의 컬리. 축구를 사랑하지만 언젠가 카센터를 열고 싶다고 말하는, 그보다는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녀석. 그 사랑스러운 녀석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자축 파티를 열었던 그 날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행하게도 살해 당해요. 아웃 당할 짓은 전혀 않은 녀석이였는데, 전반전도 채 끝나지 않은 이 게임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게 된 거예요. 한 선수가 사라져버린, 한 때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팀이였던 녀석들은 서서히 분열되고 깨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게 각각 부서져갑니다. 마치 우리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냐는 듯이.  

        여기까지가 뮤지컬 <뷰티풀 게임>의 1막입니다. 2막은 굉장히 정치적으로 어둡고 폭력적인 색깔을 많이 띄게 되요. 결국 축구밖에 없다고, 축구만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존은 분노에 가득찬 세상 앞에서 처참하게 쓰러지고 말아요. 그라운드 위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던 자신과 친구들은 운동장 밖 세상을 나오는 순간, 세상은 더이상 정당한 심판과 열정적인 응원과 정의로운 규칙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배신과 철저한 자신의 욕망과 욕심으로 얼룩진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을 존은 뮤지컬의 말미에 깨달게 됩니다. 그래서 커튼콜에서 다시 한번 다같이 부르는 박력넘치는 'The Beautifel Game'은 슬프고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한 때 뷰티풀 게임이였던 우리의 세상은 사라져 버리고 땀을 흘리며 달려나가야 할 곳, 내게 패스를 해 줄 니가 더이상 없다는 것, 니 패스를 받고 골로 연결할 골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이제 더 이상 우리를 환호해 줄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한 때 그런 때가 있었기 때문에 서글퍼지는 거예요. 커튼콜의 그 힘찬 무대에 눈물이 찔끔 날 뻔했어요. 

      티스토리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그것도 아주 좋은 자리에서 뮤지컬을 봤어요. 감사합니다. 축구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요. 사실 축구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던 뮤지컬이였어요. 그리고 정말 좋은 넘버들도 몇 곡 있었지만 <뷰티풀 게임>은 들려지기보다 보여지는 측면에서 강했던 무대였어요. 축구 경기를 표현한 안무들은 정말 축구장의 선수들을 보는 것같이 박력있고 사실감 있었구요. 무대장치들도 실제 축구경기를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연해되는 것 같이 화려했구요. 배우들의 몸도 전부 다 좋아서 정말 축구선수들 같더라구요. 땀 흘리는 몸을 그대로 보여준 무대였어요. 기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과는 틀려서 좋았던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요 정말 오랜만에 아, 무대가 저런 거였구나, 마음껏 느끼면서 힘차게 박수를 쳤습니다. 정말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뛰어난 노래 실력과 유연한 몸을 갖추고서 무대 위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커튼콜의 짜릿한 희열감을 느껴보고 싶어요. 이번 생에는 제게 그런 능력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터라 열심히 그 무대 위를 동경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 메리의 독백이 이어지면서 무대 한 켠의 사진에서 존, 토마스, 프랭크, 컬리, 다니엘이 한 사람씩 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경기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며 찍은 사진이였는데 어느새 사라지거나 황폐해진 사람들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런 것이 저를 이 뮤지컬을 축구도 아닌, 정치도 아닌, 한 때의 아름답고 찬란했던 청춘을 추억하는 무대로 더 기억하게 만들었어요. 지금은 내가 너를 쏘아 죽이는 황폐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도 한때 초록빛 그라운드처럼 싱그러웠다고. 몸을 부대끼며 아름다운 땀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어버린 거냐고. 축구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우리들이 맞느냐고. 노래나 가사전달력에서 부족한 면이 없진 않았지만, 제겐 충분히 멋진 무대였습니다. 짝짝짝. 당신들은 충분히 아름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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