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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회 청룡영화상을 시청하며 투덜거리다
    티비를보다 2007. 11. 23. 23:04

       저는 영화 시상식이 좋아요. 한해동안 사랑받았던 영화들이 뭐였나, 내가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놓쳤나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영화 속과 또 다른 모습을 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이 그에 맞는 상을 받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기도 하구요. 또 요즘에는 한국 영화 시상식에도 다양하고 기발한 축하무대들을 많이 준비해서 관객들과 영화인들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분위기도 좋구요. 특히 가수분들보다 영화인들이 직접 준비하고 보여주는 무대가 저는 더 좋더라구요.

       그런데 오늘 청룡영화제 시상식은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안방에 앉아서 보는데도 왜 그렇게 제 얼굴이 화끈거려지고 민망해지는지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정말 커다란 문제점, 정준호씨의 진행입니다. 오늘 정준호씨는 시상식 진행의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멘트들을 툭툭 던지시고, 김혜수씨가 옆에서 다 수습하시더라구요. 심지어 어떤 말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불분명하기도 했구요. 제가 볼 때는 정준호씨가 시상식의 순서나 대본에 관한 숙지가 전혀 안 되었던 것 같더군요. 남우주연상 시상순서를 소개할 때도 엉뚱한 멘트를 던져 김혜수씨가 당황해하면서 수습하는 듯했구요. 오늘 정준호씨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한 말은 그렇습니다, 예, 라는 말 뿐이였습니다. 멘트를 할 때는 거의 고개를 숙여서 대본을 읽거나 카메라 앞쪽편 자막화면이 있는 듯한 그 곳을 계속 주시하시면서 말씀을 하시구요. 예전에는 안정된 김혜수씨의 진행과 더불어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편안한 느낌의 진행을 해주었다고 기억하는데 올해는 보는 사람을 무척이나 긴장시킬 정도로 너무나 불안한 진행이였습니다. 반면 김혜수씨는 여전히 안정된 진행으로 빛이 나더군요. 이번에 대한민국 영화대상도 송윤아씨 혼자 진행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사실 오늘도 김혜수씨 혼자 진행을 하였다면 더 매끄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남우주연상 시상을 위해 잠깐 나오셔서 설문조사 이야기를 하시면서 진행하셨던 박중훈씨가 무척이나 돋보였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시상을 발표하러 나오시는 배우분들이요. 이건 예전부터 느낀건데 꼭 대본대로의 멘트를 읽어내려갈 때면 보는 입장에서 참 불안해져요. 늘 남 앞에 서는 배우분들도 많은 영화인들 앞에 서면 유난히 더 떨려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참 떨릴 것 같아요. 특히 나이가 어린 신인배우들의 경우에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주고받는 대화도 아닌 것이 툭툭 끊어지면서 너무나 경직된 멘트들을 건네는데 오늘은 시상식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여서 그런지 긴장하는 배우분들도 많으신 거 같더라구요. 그냥 이 멘트들이 좀 더 본인의 입에 맞는 유연한 멘트들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들이 앞에서 쭈빗거리면서 너무 읽어내리는 듯한 멘트를 하면 저도 덩달아서 쭈빗거리게 되요.  

       베스트 드레서 상두요.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없었던 상 아닌가요? 여자배우들에게만 주는 것도 그래요. 설명하는 걸 보니깐 영화 속 베스트 드레서도 아니고 오늘 시상식에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온 여배우 BEST5를 나름 즉석에서 정해서 주는 것 같았는데,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자배우들이 남자배우들보다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긴 하지만 여배우들만 호명해서 나란히 세워서 베스트 드레서니 보시라, 예쁘지 않느냐, 식의 패션쇼도 아닌 것이 너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습니다. 여배우들도 무척이나 당황해하면서 민망해하지 않았습니까?

        예전의 故 이은주씨나 김효진씨가 영화 속 재즈를 화려한 시상식 무대 위에서 부른 축하무대가 참 좋았어요. 같은 영화인이고 함께 축하하고 준비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번 청룡영화제 축하무대의 한예슬씨 무대는 왠지 영화 홍보겸 해서 나왔다는 인상이 들었구요. 제일 처음의 원더걸스 공연도 귀엽기는 했으나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원더걸스 팬이라서 즐거워하면서 보기는 했지만요. 이번 시상식을 통틀어 제일 좋았던 무대는 개그콘서트 뮤지컬팀이 보여준 거위의 꿈이였던 것 같아요. 뮤지컬팀이 영화 스탭들의 어려운 환경들을 연기하면서 그래도 영화의 꿈을 버리지 말자고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서로를 격려하면서, 인순이(씨)가 등장하셔서 거위의 꿈이 열창하셨어요. 카니발의 거위의 꿈도 좋았지만, 인순이가 부르는 거위의 꿈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여서 항상 눈물이 나요. 정말 좋았어요. 시상식 내내 영화인들이 반복해서 말한 한국 영화계의 어렵지만 힘을 내자,가 이 노래에 모두 함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였죠.

       1부로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건지 어떤 멘트도 없이 갑자기 끊기고, 갑자기 상을 받은 전도연씨 곁에 가서 남편에게 한마디 남기라는 흐름에 맞지 않는 정준호씨의 진행도 그렇고, 스탭들 시상 때만 후보 소개도 없이 바로 시상만 하는 것도 그렇구요. 시간이 없다는 식으로 빨리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시간이 남아서 어정쩡하게 시상식이 마무리가 되더라구요. 물론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여러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은 시상식임은 알고 있지만 올해 청룡영화상은 너무나 준비가 미비했던 것이 안방 너머에까지 훤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시상식 내내 민망하고 불편하고 불안하기까지 했구요. 이번 시상식은 배우들도 많이 참석한 것 같더라구요. 시상을 하지 않아도 후보에 들지 않아도 참석한 배우들도 많이 보였구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어려운 영화계에 좋은 위로와 격려를 던지는 따뜻하고 좋은 축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아쉽습니다. 적어도 티비로 지켜보는 영화팬이 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시상식 보려고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왔는데 말이예요.

       아무튼 수상하신 분들 모두 축하드려요. 수상하신 분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님도 계셔서 안방에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러 영화인들이 말한 것처럼, 거위의 꿈이 말한 것처럼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있으니 힘든 상황이 곧 좋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처럼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고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부디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내년에는 좀 더 나은 청룡영화 시상식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청룡영화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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