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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맥을 잡아라 - 가족, 한 배를 탄다는 것
    티비를보다 2007. 11. 21. 14:37

        지난 주말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오래간만에 드라마시티를 봤어요. 요즘 음치로 저희 가족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김성은씨와 만수 아빠, 최주봉씨가 나오는 발랄하고도 따뜻한 드라마였어요. 드라마 보고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대본까지 찾아서 읽었어요. 보니까 올해 KBS 극본 공모 당선작이더라구요. 굳이 특별한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가족과 내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수맥을 잡아라.

        하수지(김성은 역)는 지금 실질적인 가장이예요. 선장이셨던 아빠는 퇴직하시고 집에 계시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며 역시 백수로 지내고 있어요. 수지는 집이 지긋지긋해요. 아빠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돈이라면 벌벌 떨면서 아끼고, 오빠는 늘 수지에게 손을 벌리며 3만원씩 가져가고, 엄마는 이 남자들에 치여 고생하고. 그래서 수지의 소원은 조용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독립된 공간을 가지는 거예요. 아빠와 오빠와 함께 치여 지내는 이 곳은 편안하지 않아서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수도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오래된 집이라 수도관 어디쯤에서 누수가 되고 있었는데 아빠는 200만원되는 어마어마한 공사비를 아끼려고 직접 수도공사를 하려고 해요. 하루종일 집안 전체의 수도관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거예요. 마당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집 안까지 들어와 거실을 파헤치고, 부엌을 파헤치고 화장실까지 파헤쳐요. 집안이 개판이 되는 꼴을 못 보겠는 수지는 아빠에게 화를 내고 사람을 불러서 공사를 하라고 하지만 아빠는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고 땅을 파요. 아빠에게 뺨을 맞고 집까지 나가지만 결국 수지는 돌아와서 아빠와 화해하고 누수지점도 찾아 터진 물세례를 행복하게 맞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요. 누수되고 있던 수도관은 바로 끝까지 아빠가 파지 않은 수지의 방 아래에 있었어요.

       보수적이고 무조건 큰소리부터 치고 짠돌이 아빠, 절에 자주 가는 엄마, 오히려 동생같은 어눌한 오빠, 그리고 다리가 부어터져라 일하며 혼자만 고생 한다며 늘 집에 불만인 수지까지. 캐릭터들이 재밌고 생동감이 넘쳐요.꼭 우리 가족같기도 하고, 이웃집 모습이기도 하고. 공사비 아낀다고 직접 땅을 파는 아빠의 모습은 더더욱 그렇구요. 전체적으로 공감가고 재밌고 찡하기도 했어요.


       특히 이 드라마에서 좋았던 부분은 수지가 아빠와 싸울 때와 화해할 때 거론하는 '배'예요. 아빠는 가족을 위해 늘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있었고 그 배를 이끄는 건 선장인 자신이였어요. 정해진 항로야 있었겠지만 그 배를 이끄는 건 바로 아빠 자신이였죠. 그런데 퇴직을 하고 일 때문에 오랫동안 배를 타고 있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1년에 거의 없었던 아빠가 이제 매일 집에 있으니까 아빠 자신도 그렇고 가족들도 너무 답답하고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익숙하지도 않구요. 이런 대사들이요. 그리고 집이 그렇게 어려워진 건 아빠가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기도 했거든요. 가정을 배로 비유하는 대사들이 나와요.

    하루종일 일하다 들어왔는데 엄마는 절에 가고 집에 있었던 아빠와 오빠는 수지에게 엄마가 없다며 밥 하라고 그래요. 우리 집에선 남자는 부엌에 안 들어간다면서. 여기서 배에 빗댄 대사가 나와요.  

    수지 : 여긴 아빠 명령대로 움직이는 배가 아니예요. 우린 선원이 아니라구요.
    우기 : 그래! 밖에 바다가 안 보이는 걸 보니 배 아니네. 평생 너희들 벌어 먹이느라 바다 위에 떠 있다가 이제야 땅 좀 밟고 사는데 어째 배에 있을 때보다 더 불편하냐? 굶기기까지 하고 말야!

    아빠와 싸운 뒤 독립해서 나온 수지에게 아빠가 찾아와요. 여기서 또 배 이야기가 나와요.

    우기 : 여긴 집이냐?
    수지 : 편해요.
    우기 : 내가 때린 건 미안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집을 나오는 건...
    수지 : 같이 살면서 싸우는 것보단 나아요. 전 이제 아빠가 선장하는 배는 안 타요.

    그리고 온 가족이 화해 한 후 아빠는 또 이런 대사를 날려요.

    우기 : 먹자! 누수도 잡고 우리가 다시 한 배를 탄 기념이다!

       그리고 또 좋았던 부분은 수지가 아빠의 초라하고 작아진 등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예요. 사실 아빠는 수지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써버리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젊은 시절에는 뭐든지 다 뚝딱 해결할 수 있었는데, 늙어서는 집 안의 땅을 모조리 다 파도 누수되는 파이프 하나 찾아내지 못하는 무능한 가장이 되어버린 자신을 책망하는 아빠의 등과 마주하는 순간, 수지는 눈물이 핑 돌면서 그 순간 아빠를 모조리 다 이해해버리게 되요.  


        이 단막드라마를 보고 정말 우리가 험한 세상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가족이란 더 그런 거 같아요. 함께 힘을 합쳐 노를 저어야 하지만 늘 삐거덕거리죠. 왼쪽의 아빠 때문에 배가 잘 나아가지 않는 것만 같아 투덜거리게 되고, 뒤에 앉은 동생때문에 자꾸만 배가 뒤로 가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어요. 나만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런데 노를 젓는 데 필요한 건 협동이잖아요. 마음을 같이해서 호흡을 잘 맞추는 것. 너와 나, 각각이 아니라 우리가 되는 순간에 배가 물살을 가르며 쫙쫙 가장 잘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부모님의 등은 힘이 없고 초라해져버렸지만 괜찮아요.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힘을 내면 되니까요. 서로를 아끼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배는 모터없이도 잘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오래간만에 가족을 생각할 수 있었던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했던,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첫 작품으로 이렇게 좋은 글을 쓰셨으니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를 그려내실 거라 믿어요. 작가님 당선도 축하드리고, 좋은 작품 감사했습니다. 오늘은 엄마, 아빠에게 전화 한 통 드려야 겠어요. 우리 열심히 항해하자구요.


    사진출처 | KBS 드라마시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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