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연수 작가와 팻 매스니
    모퉁이다방 2007. 10. 30. 13:15
       어제 김연수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다녀왔다. 작가님 책을 조금밖에 읽지 못한 주제에 초대 신청을 하고 정말로, 꼭, 반드시 초대되었으면 좋겠다고 빌고 있었는데, 당첨됐다는 메일이 왔다. 얼마나 좋았는지. 월요일이라 공연이 없는 연우 소극장에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삐그덕 소리가 많이 나서 불편하긴 했지만 작가와 연극무대라니 왠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수 작가님은 무대 중앙에 앉으셔서 강연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면서 책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으면 한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번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 독일 대사관에서 자신을 독일로 보낸 이야기, 그 곳에 관한 느낌들, 생각들, 그래서 쓰게 된 이번 책에 관해서. 예전에 여성지에서 일하던 시절 이야기, 그리고 출판 저널에서 일하면서 소설을 썼던 경험에 대해 마치 친한 사람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떨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해 나갔다.


       어제의 이야기들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 소설 쓰기에 관한.

       한번은 한 2시쯤 됐는데 무진장 무섭더라구요. 갑자기요. 지금은 제가 그런 생각 잘 안 하는데 소복을 입은 여자가 저희 아파트가 25층인데 창을 보고 있는데 그 창에 고개만 딱 (웃음) 느낌이죠. 그런 느낌이. 무섭더라구요. 혼자 있으니까. 다 자고 있는데. 겁이 딱 나는데 그때 제가 겁이 단숨에 없어진 게 뭐냐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 (웃음) 힘들어 죽겠다. 소설 쓰는 거.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 (웃음) 그때 따닥따닥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키보드에서. 쓰면 타닥타닥 소리나고 안 쓰면 조용하고 쓰면 소리나고. (웃음) 창이 하나 이렇게 있고 타닥타닥 소리가 날 때 어떤 느낌이냐면 비행기 몰고 밤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제가 조종을 하고 있고. 뭐랄까. 아주 행복한 순간의 느낌인데.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어요. 가끔씩 그런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 주로 음악을 들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음악을 좋아하니까. 예전에 좋아하는 소설 중에 생텍지페리의 <야간비행>에서 남자주인공이 밤하늘을 계속 날라 다녀요. 그 사람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외롭게 혼자 비행을 하는데 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제가 들었던 음악이 'Are you going with me?'이라는 연주음악이 그 느낌과 비슷하거든요. 그 상태의 그런 어떤 느낌이 오더라구요. 내가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때의 이렇게 밤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정말 자유롭구나, 하는 느낌이. 그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은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계속 해보고 싶다. 평생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면 내가 취직을 해서라도 계속 밤마다 이렇게 써보고 싶다. 하다못해 다른 일을 해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이 일은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타닥타닥. 이 소리의 감촉이 너무 좋다. 타자기의 자판을 누를 때 나는 타닥타닥. 키보드의 자판을 누를 때 나는 타닥타닥. 특히 노트북 자판의 타닥타닥 소리. 이 소리의 감촉 속에 이야기가 있고 나를 위로해줄 글자들이 묻어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작가로 나오는 영화가 있으면 거의 다 본다. 영화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영화가 아무리 엉망이라도 용서가 된다. 작가님의 입 속에서 발음되어지는 타닥타닥 소리도 참 좋았다.

       요즘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지금은 변했어요' 라는 인터뷰 기사를 발견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도 김연수 작가님이 예전에는 자신의 소설을 독자들이 보지 않아도,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고. 지금은 소설이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예전에는 소설이란 원본, 진리를 찾는 것이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나니 그 원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고.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더 만들어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들이 좋았다. 나는 왜 이런 말들이 좋을걸까 생각해 봤다. 그 사람의 성향 자체는 크게 변화할리 없고, 그 뼈대 자체가 변하는 것을 원치도 않지만. 나는 그게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과 내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인 것같다. 내가 이 사람과 같은 하늘 안에 동시대를 살아가며 내가 들이 마쉰 공기가 그가 내쉰 공기이기도 하고, 그가 들이 마쉰 공기가 내가 내쉰 공기이기도 하다는 것.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들이 변해가듯이 그도 변해가고. 그러므로 내 생각들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어제 작가와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아, 그리고 질의 응답 시간에 고3 담임인 선생님이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제자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열망은 백전백패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에 내 마음 속 어딘가가 철퍼덕 무너져 버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내 자신의 이십대는 열망 그 자체였고, 백전백패였다고. 하지만 열망때문에 백전백패를 견뎌낼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질의 응답 시간까지 끝내고 사인을 받았다. 작가님은 내 이름을 쓰고, 2007년 가을에 김연수, 라고 사각사각 펜소리를 내며 사인해 주셨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날씨 속에 둘러쌓여있던 10월이었는데 작가님의 곱디고운 글씨로 아직도, 여전히 가을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알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