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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렛다운
    티비를보다 2021. 7. 21. 06:00

     

     

      조리원 입성 첫날 울었다. 의지했던 남편을 2주동안 만날 수 없고 낯선 곳에서 생애 처음 해보는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턱 밑까지 부담으로 다가왔다. 조리원 일정은 간단했다. 코로나 때문에 프로그램은 진행되지 않았다. 수유와 아침, 점심, 저녁식사. 마사지가 있는 날이 있고 없는 날이 있었다. 수시로 수유를 해야했고 아침과 저녁에 모자동실 시간이 있었다. 아침식사 뒤에는 생과일주스가 점심식사 뒤에는 두유를 곁들인 간식이 나왔다. 야식으로는 호박죽. 수유는 각자 방에서 했고 식사는 칸막이가 설치된 식당에서 다같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겠는데 당시에는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며 방으로 들어온 아이는 젖을 물리자마자 잠들어버렸다. 이번엔 제대로야, 양껏 먹여 보냈어, 점점 방법을 터득하고 있어, 싶었는데 30분도 되지않아 신생아실에서 콜이 왔다. 탕이가 배고파하네요. 보충할까요? 원장선생님이 가끔 와서 자세를 잡아주고 방법을 알려주셨지만 계실 때는 잘 되던 것이 혼자 있을 때는 되지 않았다. 아기와 함께 끙끙대며 시간을 보내다 낙심하며 신생아실에 데려다 주는 일상이었다. 

     

      마사지를 받는데 옆의 분이 말하더라. 삼일 정도까지는 진짜 우울했어요. 3일이 지나자 적응되나 싶었는데 그 뒤부터 시간이 쏜살같이 가는 거예요. 퇴소를 앞둔 분이었다. 정말 맞았다. 삼일까지 매일 울었더랬다. 외로워서. 수유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밤에 잠을 잘 수 없어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답답해서. 그 3일동안은 식당에서 말없이 밥을 먹었더랬다. 4일째 되는 날이었고 점심시간이었다. 조금 늦게 갔더니 늘 앉던 자리에 그 날 입소한 분이 앉아 있었다. 다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국을 한 술 뜨니 앞의 분이 말을 걸어왔다. 첫째세요? 수술하셨어요? 아프진 않으세요? 병원이 어디였어요?

     

      그렇게 앉은 네 사람이 밥멤버가 되었다. 물론 그 날 입소한 누군가가 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다른 곳에 가 앉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첫째세요? 자연분만이요? 많이 아프시죠? 병원이 어디예요? 실밥은 풀으셨어요?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조리원 생활이 점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겉으로 봤을 땐 다들 잘 하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다들 서툴렀고 (심지어 둘째 엄마까지) 다들 몸이 조금씩 아팠고 다들 수유가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조리원 후의 생활을 걱정하고 있었다.   

     

      '2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오드리' 라는 문구에 이끌려 보게 된 <렛다운>은 그런 드라마였다. 육아교실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육아교실 첫 날, 오드리는 수업을 듣다 중간에 일어난다. 오드리는 자신의 죽을 뻔 했던 출산경험을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고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매일 밤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하기 싫었다. 자기는 혼자 잘 할 수 있다며 이런 육아교실 따위는 필요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하지만 다음 수업에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죽을 뻔 했던 출산경험을 공유하고 매일밤 잠 못드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차를 몰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다들 문제 없어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서로 공유하기 시작하며 나의 생활이 괜찮아진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된다. 

     

      드라마 마지막 회. 네 아이를 키우며 알코올에 의존하는 바버라는 술을 멀리 하기 위해 매주 한번씩 댄스홀을 찾는다. 그리고 육아교실 친구들을 부추겨 함께 춤을 추러 가자고 한다. 친구들은 바버라 덕에 오래간만에 모이고 댄스홀 앞에서 근황을 나눈다. 오드리는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임신을 해 결국 둘째를 낙태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자신의 몸을 위해 아이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무척 힘이 들었다. 비난받을까 겁났고 자신이 엄마 자격이 있을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서 함구했다. 그러다 술을 잔뜩 마신 어느 날 남편과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누군가와 이 이야기를 나누라고 한다. 그 뒤 엄마에게도 털어놓고, 육아교실 선생님께도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날 댄스홀 앞에서 친구들에게 갑자기 말해버린다. '그냥 자기들한테 말하고 싶었어. 털어놓으려고 했었거든. 오랫동안.' 친구들은 괜찮다며 자기도 했었다고 말하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다독여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함께 울어준다. 어제 설거지를 하다 생각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였구나. 털어놓으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질 수 있다고. 그러니 혼자서 끙끙대지 말자고. 함께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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