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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카레
    모퉁이다방 2018. 11. 20. 20:39



       간만에 보경이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샤브샤브집에서 만났다. 이를테면 우리의 단골집인데, 샤브샤브집에 간 것도 오랜만이었고, 우리가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가 오픈시간을 알아보지도 않고 약속시간을 정해서 근처 커피집에서 샤브샤브집 문이 열 때까지 기다렸다. 보경이가 종이가방을 건넸는데, 거기에 태국에서 사온 선물들이 있었다. 어유 언니 말도 마, 로 시작하는 보경이네 부부 태국 여행담에는 이보다 틀어질 수가 없다, 싶을 만큼 여러 일들이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 택시를 예약해뒀는데, 날짜를 잘못 예약해서 택시는 전날 이미 왔다 갔고, 좋은 마사지숍을 예약해뒀는데, 예약변경요청 메일이 왔지만 받지를 못 해 이미 취소되어 있었고 등등.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담을 듣는데, 나는 들으면서 고생했겠다, 고단했겠다, 라는 생각보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에게 평생 기억에 남겠다, 생각했다.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 깔깔거리며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여행이 되었네, 하고. 나도 동생도 이제 오사카에서 비행기 놓친 이야기를 매번 깔깔대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경이가 준 물건 중에 태국카레 페이스트가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타이 그린 커리 페이스트. 얼마 전에 <나혼자 산다>에서 헨리 아버지가 태국카레를 아주 맛나게 만드시길래, 그리고 친구들이 그 카레를 아주 맛나게 잘 먹길래 이 페이스트 생각이 나 마트에 다녀왔다. 해산물을 잔뜩 넣고 싶었는데(막 진짜 게살 이런거), 마음에 드는 해산물이 별로 없어서(비싸서) 새우만 사왔다. 닭안심도 사고, 빨간 파프리카도 샀다. 시금치도 한단 사고, 새송이버섯, 양파도 샀다. 집에 약간의 당근이 있었다. 양파를 길게 썰어 버터를 넣고 갈색빛이 날 때까지 오랫동안 볶았다. 거기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야채와 새우, 닭고기를 넣고 노릇노릇 맛있는 냄새가 날때까지 볶았다. 아, 마트에서 처음으로 코코넛밀크를 사봤다. 코코넛밀크를 넣고, 카레 페이스트를 쪽 소리가 날 때까지 짜서 넣었다. 그리고 가끔 저어주면서 보글보글 끊였다. 나는 카레고 미역국이고 물을 많이 넣고 듬뿍 졸이는 걸 좋아한다. 국물이 제법 줄어들었길래 먹어봤는데, 밍밍했다. 어쩌지 하면서 후추도 갈아 넣고 파슬리 가루로 휙휙 넣어보다가, 집에 사놓고 딱 한번만 써본 치킨 파우더 가루가 있는 게 떠올랐다. 치킨 파우더 가루를 넣고 보니, 어디선가 태국카레에 피쉬소스를 넣으라고 한 게 생각났다. 집에 피쉬소스가 있을 리 없으니 멸치액젓을 한 숟가락 넣어봤다. 그리고 조금 더 끓이니 아아, 맛이 난다. 


       나의 음식 마루타 동생은 맛있다고 평하며, 똠양꿍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다. 헨리 아버지가 카레에 두부를 넣었던 게 생각이 났다. 국물이 걸쭉하지 않고, 국 같아서 이 국물에 밥을 먹으려면 꼬돌꼬돌한 밥을 해서 말아 먹는 수 밖에 없겠더라. 왠지 밥보다 두부가 더 어울릴 것 같아 후다닥 나가서 두부가게에서 막 만든 두부를 사가지고 와 썰어 넣었다. 첫 태국카레인데 괜찮게 완성했다. 동생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셨는데, 해장이 된다며 두 그릇이나 먹었다. 언젠가 태국에 가서 태국카레를 먹어보리라. 보경아, 컵쿤 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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