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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의 밤
    무대를보다 2018. 8. 7. 17:18



       그 주에도 이렇게 더웠던가. 긴팔 원피스를 입고 갔으니까, 아직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는 6월 마지막 날에 정밀아를 만나러 갔다. 친구와 나는 두 번째이고, 동생은 첫 만남이었다. 공연장에서 셋이 보기로 했는데, 가는 도중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동생에겐 우산이 있었고, 나는 얇은 장우산을 샀고, 친구는 공연장 근처 스타벅스 처마지붕 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까지 우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걸어갔다. 예매자 확인을 하고, 책갈피로 쓰면 딱 좋을 예쁜 빛깔의 티켓과 가사 한 구절이 새겨진 나무연필 두자루를 건네 받았다.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친구, 동생, 나 이렇게 나란히 앉았다.


       정밀아는 궂은 날,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익숙해진 노래들을 차례로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지난 공연과 멘트와 레퍼토리가 비슷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여전한 정밀아였다. 친구와 나는 지난 겨울 정밀아를 처음 만나고 '신여성' 비슷한 무언가 단단한 인상을 받았는데, 동생도 이번에 그랬다고 했다. 정밀아는 향이 옅게 번지는, 단단하게 속이 여문 봉오리처럼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또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두 번의 공연 모두 머리카락을 뒤로 단단히 여미고 나왔더라. 어떤 각오가 단단히 느껴지는 머리였다. 아마도,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겠다는 각오.


       공연을 보고 나면 그 날의 공기, 어느 순간의 웃음과 눈물, 어떤 멘트로 인해 똑같은 곡이 공연 뒤에 들으면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날은 '다시'가 그랬다. 이별을 하고 힘들어하는 동료와 밤새 술을 마시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는데, 그 뒤에 동료가 해맑게 다가와 다른 사람과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서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러야 할지 난감했단다. 그런데 몇 개월 뒤에 동료의 새 연애가 또다시 깨어져서 진심을 다해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 

     

    이별의 눈물 안고 잠이 든 너를 

    토닥 토닥 토닥

    꿈에는 슬픈 기억 담지 않기를

    부디 부디


    언젠가 나도 이별을 했었는데 

    참 슬펐었어

    내일이 없을 듯한 그 날 밤에는

    비가 한참 오더라


    음- 시간은 많은 것을 잊게 한 걸까

    변하지 않는 것 없는

    이 세상을 또 알게 하더니


    언제쯤 이런 사랑 다시 올런지

    알지 못하지만

    구름을 걷는 듯이 차오를 기쁨 

    다시 사랑 사랑


      구름을 걷는 듯이 차오를 기쁨, 다시 사랑 사랑. 아, 가사 정말! 공연을 보고 나왔더니 비가 그쳐 있었다. 우산을 접고, 동생이 찜해둔 곱창집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었다. 비온 뒤라 공기가 정말 좋았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무엇보다 방금 우린 좋은 공연을 보고 나왔고. 룰루랄라 걸어갔으나 곱창집에는 그 날 준비한 곱창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화사 때문!) 어쩔 수 없이 근처 양꼬치 집으로 갔는데, 나는 그 날 두부피에 야채와 고기를 싸 먹는 중국식 월남쌈을 처음으로 영접하였다. 아, 진짜 맛있더라! 살도 안 찔 것만 같고! 친구와 동생은 자주는 보지 못해도 오랜세월 보다보니 가족 같아졌다. 동생은 친구에게 진짜 고민을 이야기하고, 친구는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동생이 가고 싶어했던 망원동 바르셀로나에서 끝맛이 희미하게 사라지는 와인을 마시고 자정을 넘겨 헤어졌다. 


       이제 우리 셋 모두 정밀아의 1, 2집을 들으면 비가 그친 합정과 망원의 밤을 생각하겠지. 시간은 많은 것을 잊게 하지만, 또 이 세상을 알게 하니까. 열심히 살다 또 언젠가 만나 서로 토닥토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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