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질투
    모퉁이다방 2018. 8. 2. 15:08



      어떤 이야기 끝에 차장님이 그러셨다. 질투를 하지 않아서 그래. 점잖은 사람인 거야.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점잖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에 사전 검색창에 '질투'라고 쳐봤다. 두번째 설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죄다 자랑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혈연이 가진 것도 있었다. 아니, 저런 것까지 자랑을 하나.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 대한 험담도 있었다. 그 자리가 무척 불편했는데, 자리에서 빠져나오자 나도 그에 대한 험담을 시작하는 거였다. 그게 싫었다. 정말 싫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질투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는 어떨 때 질투를 하고, 어떨 때 질투를 하지 않는 걸까 생각해봤다. 


       주말, 티비에서 예전에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아주 긴 변명>이 방영되는 걸 보았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던, 잘 나가는 작가인 남편이 아내를 사고로 잃고 함께 사고로 죽은 아내 친구의 딸과 아들을 자발적으로 돌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남자주인공은 죽은 아내의 친구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동안 그 집에 가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밥도 먹고, 집안일도 함께 했다. 그렇게 나이가 든 남자가 성장해간다는 이야기였다. 중간에 큰 위기와 갈등, 마지막 화해의 순간도 있었고. 다시 본 그 영화에서 내가 최근 골몰했던 '질투'에 대한 어떤 답을 제시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처음 본 작년에도 이 대사들이 마음에 와 닿았었나. 이래서 좋은 작품은 시간을 두고 두번이고 세번이고 볼 필요가 있다. 


       남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죽은 아내의 친구 남편 가족이 함께 해변으로 물놀이를 하러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대로 행복하다고 느낄만한 그런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의 중간에 남자어른들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멀찌감치 지켜보며 나누는 대화다.


    - 지킬 게 있어서 부러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 아냐. 두려워. 저 애들이 없으면 편할 거라는 생각도 했어. 나 혼자면 사고로 지금 죽어도 상관없는데.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애들이 있어서 살아가는 거면서. 

    - 그건 그렇지만.

    - 자네는 바보야.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이 말. 소설가 닐 게이먼의 말이라고 한다. "정말 의미있는 것은 자신의 아픈 곳을 드러낼 줄 아는 솔직함과 정직함이다. 어렵고 고된 경험을 하던 순간에 자신이 인간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직하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지만, 내 주위에도 나보다 잘 되고, 좋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건 사회가 보는 관점에서. 내가 가깝게 지내는 이 사람들에게 나는 잠시 부러워할 지 언정 질투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하거든. 새로 얻게 된 것에 이야기할 때, 잃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새로 얻게 되어 그것이 없는 너보다 행복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국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질투를 하나보다, 는 결론을 얻었다. 이 질투라는 것은 쓰잘데기 없는 감정소비여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 현자가 아닌 나는 그런 사람과의 만남을 아예 없애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질투 따위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혹은 가지지 못한 것을 귀중히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