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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
    모퉁이다방 2018. 7. 11. 23:40



       오늘은 기계 위에서 땀 흘리며 걷기 싫어서 불광천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사촌동생의 외할아버지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숙모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거리가 엄청나게 좁혀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나 잘해주는 숙모의 아빠인 것이다. 나는 엄청나게 습해진 여름밤길을 걸으면서 그날을 떠올렸다. 명절이었고, 숙모와 사촌동생이 고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우리를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밤. 기약없이 늦어지는 버스를 간이 정류장 벤치에서 기다리던 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숙모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숙모의 아버지는 반듯한 분이었다고 했다. 너무 반듯해서 숙모는 좀 느긋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숙모가 묘사했던 반듯했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들을 낳고, 그 자식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빈틈이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또 들고, 또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시기 까지. 그러다 오늘 마지막 숨을 내쉰 순간까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고아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뭐랄까, 많이 슬프다. 1시간을 넘게 걷다 들어와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어떤 문자를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이렇게 좋은 숙모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우리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한번도 뵙지 못했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보냈다. 이소라의 아멘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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