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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진
    여행을가다 2018. 4. 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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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에 다녀와서 대게와 홍게보다 더 생각이 났던 건, 파래전이었다. 심심하게 생긴 전이 기본반찬으로 나왔는데, 무심히 먹다 바삭한 것이 너무 맛나 사장님께 무슨 전이냐고 물어봤다. 츤데레 스타일의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파래전이래요. 파래로 전도 만드는 구나. 맛나게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했다. 두 장째 먹는 데도 맛있더라. 주문진에서 하룻밤 자고 인천으로 왔는데, 인천의 해물찜 식당 티비에서 파래전 부치는 장면이 나왔다. 돌아와서 파래전 만드는 법을 검색해봤다. 별 게 없었다. 파래를 씻어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 전을 부치면 됐다. 인터넷 속 파래전의 재료들은 화려했는데, 주문진에서 먹은 건 파래와 옥수수 딱 두 가지만 들어갔다.

     

       몇 주 뒤에 만나서 무언가를 먹다가 아, 파래전 생각난다, 라고 말했다. 진짜 맛있었지, 라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또 놀러 가서 먹으면 되지,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치, 그 맛을 여기서는 느낄 수 없지. 그 파래전에는 파래와 옥수수만 들어간 게 아니지. 주문진까지 가는 길에 본 높은 산에 둘러쌓인 눈꽃들과 쌓인 눈이 날리던 풍광, 실패한 스팸무스비, 산을 넘으니 한겨울에서 늦겨울로 바뀌던 온도, 크지 않은 바닷가 마을의 짠내, 8층 높이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았던 구름낀 하늘과 잔잔해보이던 바다, 함께 걸었던 복작복작했던 수산물 시장과 아무도 없던 항구, 해일 때문에 출입 통제되었던 등대까지. 이 많은 것이 파래전의 바삭함을 만들어 냈지.


       인천의 숙소가 훨씬 비싸고 좋은 곳이었는데, 나는 주문진의 숙소가 정말 좋았다. 모텔을 리모델링했다는데 깔끔하고, 조용했다. 창문성애자, 테라스성애자인 나를 쏙 만족시켰다. 방은 작았는데, 사실 클 필요도 없지. 화장실도 깔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몇 발자국 안 가 커튼을 치면 주문진 동해 바다가 보였다. 유리문을 열고 자그마한 테라스로 나가면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저녁으로 대게를 먹고 걸어서 숙소로 왔다. 오는 길에 아직 문이 열려있던 건어물 가게에서 황태 껍질을 사고,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샀다. 테라스에 가지고 온 캠핑 의자를 폈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실은 바다가 있는, 그곳을 보면서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셨다. 커튼을 닫지 않고 잠을 잤는데, 아침이 되자 누운 자리에서 선명한 일출이 보였다. 바로 앞에 생선구이 맛집이 있어 아침도 든든히 먹었다. 


        아빠는 언젠가 삼촌들, 고모와 함께 한, 몇 밤을 잔 여행에서 돌아와서 심한 후유증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가슴이 실제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너도 그러냐고 물어봤단다. 고모가 오빠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했단다. 그 말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아빠에게 전해 듣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마음이 아팠는데, 주문진을 다녀오고 몇 주 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가면 되지, 라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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