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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척
    모퉁이다방 2018. 2. 18. 21:18


       사촌동생은 일월 첫째주 주말에 삼척에서 결혼식을 했다. 덕분에 밤버스를 타고 삼척에 갔고, 쏴아쏴아 소리가 커다랬던 삼척바다를 다시 보았고, 바다를 곁에 두고 하룻밤을 잤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해도 봤다. 사촌동생은 내내 싱글벙글이었는데, 이번 설에 보니 살이 두둑하게 올라 있더라. 선물이라고 건네주는 와인 두병을 그 자리에서 땄다. 새식구와 함께 두런두런 앉아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물었다. 뭐가 좋아요? 사촌동생의 아내가 된 새식구는 방긋 웃더니 말로 딱 나열할 순 없는데 그냥 좋아요, 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사촌동생에게도 똑같이 물었는데, 사촌동생이 엄청난 대답을 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는 막 놀렸는데, 그 말을 각자 곱씹어보고 곱씹어봤다. 동생은 새식구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멘트들은 더 달콤했는데, 평소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묵직함을 지니고 있던 동생이어서 더 그랬다. 결혼이 이렇게 좋은 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할 걸 그랬다, 늘 집에 가면 불이 꺼져 있었는데 불 켜진 집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무척 좋더라 등등의 말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곁에서 집안일을 하며 가만히 듣고 있던 숙모는 나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말을 무척 아끼는 무뚝뚝한 아들이었는데, 연애를 하면서 뭔가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지더라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살갑게 다가오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게 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던 숙모에게도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줬다고. 좋은 연애는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퍼져나가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변화시켜주는 구나. 삼촌은 새식구에게 메시지가 오면 식사를 하시다가도 중단을 하고 20여 분 정도 답장을 하신단다. 사촌동생의 '나 답게' 말을 오래 곱씹어 보던 동생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사촌동생이 그동안 장손의 무게를 무겁게 지고 있었는데, 새식구는 그걸 잊어버리게 만들어 준 것 같다고. 사촌동생이 사촌동생 그대로 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같다고. 세심하고 배려 깊은 사촌동생은 내 작은 변화를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 엄청나게 잘 살, 나의 착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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