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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서재를쌓다 2018. 1. 3. 09:01



        출근을 하지 않고, 점심 전에 충무로에 가는 일정이 있는 아침. 새벽에 일어났는데 침이 잘 넘어가지 않아 목감기가 오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동생이 구워준 부침개와 두부와 우유를 넣고 갈아만든 콩물을 아침으로 먹었다. 보이차는 다 떨어져 어젯밤에 티백과 찻잎을 함께 주문했다. 이불을 개고, 바닥의 먼지를 돌돌이 테이프로 훔치고, 간밤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게 얇은 이불을 덮어뒀다. 이제 씻어야 하는데 영 귀찮네. 친구가 오늘도 많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다녀오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책장 앞에서 새해 첫 책을 신중하게 고르고, 작년에 읽은 책 한 권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겨울나그네님이 추천해 주신 이병우의 음악과 어제 나온 우효의 새 노래를 가만히 듣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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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에겐 가게를 연 목적이 돈을 되도록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가게의 몸집을 크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많은 손님이 들이닥치면 오히려 곤란하다. 호리베 씨는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주인이 원치 않은 유형의 사람들도 와버리고 일도 번잡해져, 자신이 바라던 서점의 모습을 잃을까 봐 우려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와서 화제의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사가는 그런 서점을 차릴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그런 손님들이 이곳에서 호리베 씨의 엄선된 책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39쪽


    '도구라는 것은 소중히 다루면 언제까지라도 생명을 가진다'고 강조하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건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을 전하는 아리쓰구. '수리할 수 있는 물건만을 만드는 것이 장인'이라며 수십 년 전에 만든 상품이라도 완벽하게 수리해내는 솜씨를 발휘한다.

       "새것이 좋다거나 오래된 것이 좋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겁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항상 더 좋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 52쪽


       알기 쉽게 A to Z 식으로 배열하지도 않았다. 신간 위주의 책을 다루는 일반적인 서점도 아니었다. 선풍적인 화제와 인기를 모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힘들게 입고했는데 정작 이 서점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팔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점원들은 확신을 가졌다. 이미 검증된 베스트셀러가 아닌 우리가 '이거야'라고 확신하는 책을 차근차근 팔아나가자고, 우리 나름의 스테디셀러를 만들어나가자고 말이다. 남들이 다 유행처럼 사 가는 책보다는 흥미로운 관점과 콘셉트가 있는 책, 표지 디자인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책, 현재 유통되지 않고 출판사 창고에 처박혀 있는 보물 같은 책들을 발굴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하는 것이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존재 의의였다. 가치 있는 중고책과 교토에서 만들어진 독립 출판 서적들도 선별해서 손님들에게 선보였다. 점원들은 손글씨로 책 소개 문구를 직접 써서 모든 책 안에 정성스럽게 집어넣었다. 마음을 담아 추천했기에 문구들은 설득력이 있었다.

    - 70-71쪽


       규모가 작아도, 겉보기엔 색이 연해도, 테두리가 고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가가면 사색을 하게 만드는 존재.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로서도 기쁠 것이다.

       길이는 총 31킬로미터나 되지만 폭은 좁아 중간중간에 징검다리를 심어놓은 가모강. 서울의 한강처럼 크지도 않고, 파리의 세느강처럼 밋밋하지도 않다. 자연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굴곡을 가지며 들풀과 들꽃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고, 인공적인 조형물이나 시설 없이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해왔다. 빼곡히 심어진 나무들 덕분에 사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장소다. 그 아담하지만 명료한 존재감에서 내가 쓰고 싶은 이상적인 글의 모습을 본다.

    - 99쪽


        각 도시에 디앤디파트먼트 상점을 전개하는 방식에도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예로, 상점 위치를 정할 때는 인근 전철역에서 도보로 최소 20분 정도 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일반 상인들은 기피하는 장소를 선택했다. 일부러 찾아가기 불편한 장소에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은 손님들에게 의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와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122쪽


    오히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응원이었다.

    - 130쪽


       나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숙소다. 여행지의 숙소는 단순히 낮에 구경을 다니다가 밤에 몸을 쉬게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내게는 숙소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고급스러움이 기준이 아니라 숙소 고유의 개성과 매력을 고려하게 된다.

    - 139쪽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는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에서는 수억 연봉도, 고급 외제 차도, 명품 브랜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반면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그것이 '진짜'의 인생이니까.

    - 177쪽


       공동체의 일부로서 지척에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절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 내킬 때 언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음을 뜻할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이나 고민을 덜고 싶을 때,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싶을 때,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읽기 위해, 혹은 단순히 '혼자'로 돌아가기 위해 교토의 절은 항상 시민들에게 열려 있다. 내가 원하면 그 절을 관장하는 스님들에게 부담 없이 인생 상담을 하거나 지혜의 언어를 구할 수가 있다. 그것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참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참배할 때마다 기부를 할 필요는 없다. 강압적인 대가나 의무를 일절 부과하지 않는 점이 그들의 미덕이다.

       "즐거울 때는 종교가 필요 없으니 찾아오지 않으셔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요. 이곳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면 오히려 다행인 것이죠."

       스님의 자비로운 말씀이 인상에 남는다.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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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광에서 따뜻한 영화 한 편을 봐야지. 뜨끈뜨끈한 순대국도 한 그릇 먹고, 집에 올 때는 귤을 한 봉지 사와야지. 커피집에서 새해 첫 책 읽으면서 커피도 한 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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