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 네번째 롤

from 모퉁이다방 2017.11.15 21:51


   오늘은 일을 하다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하시는데, 예전에는 모두들 손으로 설계도를 그렸다. 사무실에 가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커다란 책상들이 있었고, 커다란 종이들에 건물 도면들이 곧게 그려져 있었다. 시대가 변했고, 아빠는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캐드며, 그 딴 것들을 배워뒀어야 했는데. 이제는 누구도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지 않는 것 같다. 내 일이 그러하듯 메일로 중요한 자료들을 주고 받고. 아빠는 그것들에 익숙하지 못하고. 오늘 전화로 자료를 요청하는데, 잘 모르고 보낸 것이 다라고 계속 이야기하셔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가만 듣고 보니 우리 아빠 같은 거다. 제가 잘 몰라서 그래요, 하시길래 그럼 필요한 부분들을 다 적어 보낼테니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차장님은 인터넷은 할 줄 모르지만, 그 책을 꼭 사야 한다고 전화주신 나이 드신 고객 분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타팀과 몇 번을 소통하고, 고객 분과도 몇 차례 통화를 한 뒤에 결국 구입할 수 있게 해주셨다. 아빠에게도, 출판사 사장님에게도, 그 나이 드신 고객 분에게도, 좋은 관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모른다고 핀잔 주지 않고, 내 일처럼 해결해 주는. 나도,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니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지만, 어찌된 일인지 계속 찍고 있는, 구닥의 네번째 롤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