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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과거를 마주하는 순간, <인 터널>
    티비를보다 2007. 8. 5. 01:56

    스포일러 왕창입니다. :)


       최근에 내가 본 드라마시티는 굉장히 신선한 소재들이 많았다. 몇주 전의 <GOD>도 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기억이 조작되는 것, 그 속에서 내가 나의 기억을 믿을 수 없고,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사람들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한 꽤 철학적인 주제라 흥미롭게 시청했었다. 오늘도 리모컨 돌리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꽤 재밌어서 끝까지 봤다. <인 터널>. 한  터널 안에서 마주치게 된 나의 과거, 너의 현재, 그리고 당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시간이 이동된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애니 속 치아키는 자신의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한 그림을 보러 과거로 찾아온다. 처음 애니를 봤을 때, 고작 그림 하나때문에? 라고 생각했는데. 비오는 어느 날 오후, 가만히 창밖을 보다가 언젠가 비가 오지 않는 시간이 올까, 라고 생각해봤다.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 미래에는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가 내리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면, 그리고 비가 내리는 시간들이 소중했던 어떤 사람이라면,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과거로 찾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그럴 거라고.

       <인 터널>도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곤 한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더 했었으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엔 부모님께 좀 더 효도했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과 헤어진 후엔 그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렇게 헤어지지 않을텐데.

       우연히 터널 안에서 세 대의 차가 사고가 나게 되는데, 세 사람은 얼마지나지 않아 이 터널에는 차들이 전혀 다니지 않고 이 터널 안에 자신들과 자신들의 시간이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각자 터널 안으로 들어오기 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지연. 23살의 그녀는 과거다. 2005년에서 이 터널로 들어왔다. 연예인 지망생이고. 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 27살의 강준성. 그는 현재다. 터널로 들어오기 직전, 그는 2006년을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한 남자. 그리고 33살의 김영호. 그는 미래다. 형사같은 기자이고, 2007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연쇄살인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결국 터널 안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이거다. 한지연은 2005년에는 살아있지만, 2006년에 살인을 당해 죽게 된다. 2006년 지연과 준성은 우연히 만났고, 예기치않게 준성은 지연을 칼로 찌르게 된다. 지연은 준성을 대리운전 기사로 오해했고, 준성은 지연의 집에서 돈만 가지고 나오려고 했는데, 이 때 눈을 뜬 지연을 준성은 칼로 찌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영호는 4건의 동일범으로 보이는 연쇄살인사건을 취재 중이고 터널 안에서 자신이 찾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준성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 터널을 빠져나온 뒤 밝혀진 사실은 결국 지연을 죽인 사람은 준성이 아닌 영호였다는 사실이다.

       조금 복잡하지만 줄거리는 이러하고, 내가 이 드라마에서 재밌게 본 점은 이들이 터널 안에서 겪게되는 심리적인 갈등과 아이러니다. 이건 2005년의 지연과 2006년의 준성, 2007년의 영호가 함께 한 공간에 각자 다른 시간을 공유하면서 만나게 된 까닭인데.

       일단, 지연. 지연은 2005년에는 살아있지만, 2006년의 준성과 2007년의 영호에게는 죽은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1년 후 자신을 죽인 사람과 함께 있지만,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터널 탈출을 시도할 때, 지연은 누구와 함께 나가야 하는지 고민한다. 준성은 자신을 죽인 사람이다. 내가 이 사람과 함께 나가면 내가 살아있는 2005년에 도착할게 될까? 그래서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될까?

       그리고 준성. 가장 많이 갈등하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터널에 들어오기 직전 준성을 사람을 칼로 찔렀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 앞에 있고, 영호는 자신에게 1년 후엔 자신이 4명의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 한다. 지연을 죽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지만 왜 내가 살인을 한걸까? 왜 내가 3명을 더 죽인걸까? 그리고 터널 탈출 때, 영호와 함께 가면 준성은 분명 감옥행이다. 지연과 함께 가면 모든 것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연이 죽지 않은 그 때로. 2005년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끔찍한 미래따위는 없을텐데.

       마지막으로 영호. 영호는 반전의 포인트다. 영호는 지연이 쉽게 살아가는 것에 염증을 느껴 그녀를 해치려고 찾아갔는데 지연은 이미 준성의 칼에 찔린 후다. 지연은 그 때 죽지 않았다. 겨우 한번 찔린 거였고, 충분히 살아날 수 있었는데 영호가 지연을 죽인거다. 그리고 지연의 목걸이를 하고 터널 안으로 들어온다. 터널 안에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영호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철저히 숨긴다. 유일하게 두 사람과 그와 관련된 사실을 모두 기억하는 영호에게는 사실 심한 심리적 갈등따윈 없다. 오직 이 곳을 탈출하는 것. 그리고 자기 대신 준성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것뿐이다.  준성은 터널 안에서 뭔가 기억하는데, 이건 지연의 목걸이를 영호가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때는 터널을 탈출하는 중이였고, 터널을 나오자 2007년이였고 터널 안의 모든 기억은 지워졌다.

       터널 안에서의 갈등은 누구와 함께 나가야 내가 살 수 있는걸까? 세 시간 중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데 결국 드라마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 지연과 준성이 그렇게 원하던 2005년으로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던 2006년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지연과 준성의 미래지만 영호의 현재의 2007년으로 돌아간다. 터널 안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남아 결국 모든 사실은 밝혀진다. 준성은 그 전에 자살하고 말지만. 준성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준성이 1년 후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미래를 알게 되는 것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흥미롭다. 1년후 자신이 살해당할 거라는 걸 알게되는 지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만, 결국 자신의 미래가 살인범이나 죽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분명한 미래의 사실일 때에 혼돈스런 인간의 마음을 드라마는 보여준다. 미래도 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서 흐르는 것이므로 시간이 멈춰버린 인 터널에서 절망한다.  

       철학적인 드라마였다. 좋았다. 인 터널. 그런 터널이 있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까? 과거의 어떤 사람? 터널 안에서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어떤 말을 나에게 해주게 될까?    


    드라마시티(2007.08.04)
    인 터널
    황인혁 연출
    김희숙 극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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