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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의 산책
    모퉁이다방 2017. 11. 5. 08:44




       아침에는 단호박 스프를 끓여 먹었다. 얼마전 구내식당에 나온 메뉴인데 너무 맛있어서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단호박을 찌고 양파를 잘게 채썰어 포도씨유와 마가린을 넣고 볶았다. 버터와 올리브유를 넣어야 한다는데, 집에 있는 게 포도씨유와 마가린 뿐이었다. 우유를 넣고 끓이다 조금 식히고 난 뒤 믹서기로 갈았다. 그리고 다시 몽글몽글 끓여 후추를 뿌리고 먹었다. 건강한 맛이 났다. 점심으로는 당근을 채썰어 계란말이를 만들고, 이번주에 주문한 노르웨이 고등어에 카레가루를 뿌려 구웠다. 어젯밤에 쪄 놓은 브로콜리와 버섯도 함께 먹었다. 밥은 검은 콩을 넣은 현미밥으로 지었다.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조그만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서울혁신파크에 가봤다. 처음 가보는 거였는데, 불광동인 줄 알았는데, 녹번동이었다. 불광동, 아니 녹번동까지 루시드폴의 새 앨범을 들으며 걸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겨울 같네, 라는 생각을 이번주만 해도 세 번째 한 것 같다. 북페스티벌은 너무 작고, 아이들 위주라 그냥 구경만 하고, 혁신파크 구경을 했다. 행사 포스터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단풍이 진 나무들과 멀리 북한산도 올려다 보았다. 세계요리 시연강좌들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았는데, 모두 평일이었다. 베트남 분짜 요리 강좌도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대조시장에 들러, 비지와 명란젓, 파와 사과, 들기름을 샀다. 대조시장은 역촌에서 불광역 가는 길에 있는 폭이 좁지만 길다란 시장인데, 불광쪽으로 갈 때면 항상 지나간다. 역촌역 방향으로 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는 항상 군밤 하나를 더 꺼내 손에 쥐어주신다. 오늘은 쥐포튀김도 하나 더 챙겨주셨다. 마트에 들러 반쯤 남은 단호박 스프에 넣을 치즈와 아침 주스로 만들어 먹을 바나나와 케일을 샀다. 아, 헌책 판 돈으로 올 겨울 첫 붕어빵을 사 먹었다.


       서울혁신파크는 국립보건원, 식품의약안전청, 질병관리본부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혁신 실험을 창조하고 확산하는 공간으로 구체화한 곳이라는데, 둘러보니 재미있는 업체들과 공간들이 많았다. 평일에 놀러오면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소식지가 있어 가져왔는데, 한번 더 읽게 되는 문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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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푸드의 강렬한 첫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바에서 일어났다. 10여 년 전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은 뒤 아는 형님과 무작정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쿠바는 에너지가 부족해 차에 빈자리가 있으면 사람을 태우는 것이 도리인 곳이다. 하루는 우리 렌터카에 한 농부를 태워주었는데, 그 농부가 사례를 한다고 우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집 구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농부는 커피콩 한 줌을 금새 볶고 원두를 갈아 커피 한 잔을 끓여주었다. 직접 생산한 커피콩이 차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거리는 어림잡아 단 몇 시간, 수 킬로미터 내. 덕분에 커피 본연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커피는 쓴 음식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이상으로 향기로운 차가 바로 커피였다.

       취향의 물건 : 토판염
    전남 신안군 신의도 갯벌에서 온 소금. 흙바닥을 다져 평평하게 만든 뒤 생산하는 전통 방식의 소금으로 결정이 천천히 이뤄져 풍미가 좋고 미네랄도 풍부하다. 우리 집 밥맛 돋우는 일등 공신.

     - 패스트푸드보다 슬로푸드, 김원일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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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너무 자극적인 음식들로 (그것도) 사서 먹었던 것 같다. 귀찮다는 이유로, 땡긴다는 이유로. 올 겨울에는 자주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건강하고, 온전하게. 산책을 하면서 육식으로 인해 너무 많은 병이 생긴다고 채식주의자가 된 C씨가 생각났다. C씨는 농사를 잘 짓고 있을까. 바라던 아이는 가졌을까. 최근에 읽게 된 히라마쓰 요코의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도 딱 맞춰 내게 도착한 책이다. 이 책, 무척 좋다. 그래서 히라마쓰 요코의 책을 두 권 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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