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from 모퉁이다방 2017.11.01 20:43




    어제는 퇴근을 하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있는 서점에 들러 영어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듣기부터 해야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한 문장을 수십번 따라하다보면 저절로 말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외우지 말라고 했다. 그냥 끊임없이 따라하라고 했다. 세상의 온갖 손쉬운 학습법에 현혹되지 말라고 했다. 임계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디지만 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담다보면, 언젠가 항아리에서 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은 대부분 서스럼 없이 접근을 하지만, 3분도 안돼 이 아이가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고 있구나 눈치 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웃펐다. 우리는 서점 지하에 줄지어 앉아 와우, 마델, 쉬즈마델, 룩킹굳, 하우스더패밀리굳 이라는 말들을 악센트에 주의하며 함께 발음해보았다. 강의에는 강사의 추종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오늘은 연차를 내고 지난주에 검사를 했던 병원에 결과를 들으러 갔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주에 병원으로 가는데, 길이 익숙한 거다. 그리고 떠올랐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친구가 이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병문안을 갔었는데, 친구가 5인실 정도 되는 병실에 문쪽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에 친구의 작지만 쾌적한 공간이 있었다. 늘 매사에 조심을 하는 친구는 병실에서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었다. 지난주에 검사를 한다고 몸에 약을 투입했는데, 검사하시는 분이 약을 넣으면 후끈하고 열이 날 거예요, 정상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했다. 그러고 바로 그 부위가 후끈해졌다. 뜨거운데 쓸쓸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장면들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입원했던 마산의 병원, 혼자 먹었던 장어탕, 그때 아빠가 쓰고 있던 모자 색깔, 낙성대 쪽의 병원에 또 입원을 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꼭 와달라고 했다던 부탁,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 암이래 말했던 밤길, Y언니가 병실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며 보냈던 새벽의 문자, 야위어가던 할머니의 요양원 침대. 이런 것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으니, 머릿 속에 영어가 들어갈 틈이 없구나. 내 몸에 있었지만,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일부를 생각하는 가을과 겨울이 될 것이다. 내가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후의 집에서 했다.


   내일은 읽은 책을 몇 권 팔고, 붕어빵 사먹을 현금을 지갑에 준비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