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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림이
    모퉁이다방 2017. 10. 27. 22:59




       사실 조림이가 모임에 얼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날, 조림이가 온 날 비가 많이 왔었고, 내가 선정한 책을 읽고 이야기했었다.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우리는 노잼 멤버를 결성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간에 소윤이가 왔는데, 내가 데리러 나갔다. 소윤이에게 어쩌면 이제 안 나올 것 같아, 라고 이야기했었다. 소윤이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3차를 가기 전에 조림이가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일찍 강아지를 데려 와야 한다고 했다.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했다고. 강아지 이름은 '마리'가 되었다.


       그 때 조금 얇은 겉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으니 가을 즈음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우리는 전주에 가기로 했다. 같이 가기로 한 봄이가 먼저 내려가고, 조림이랑 내가 같이 버스를 타고 가게 됐다. 사실 긴장했었다. 둘이서만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어색하지 않을까, 불편해하면 안될텐데. 이른 아침 출발이라 여유있게 나오지 못해서 지하철 역에서 내려 서둘렀는데, 조림이가 늦게 출발했다고 출발 시간에 딱 맞출 수 있겠다고 다급하게 연락해왔다. 표를 찾고, 생수도 사두고, 조림이를 기다리는데 정말 출발시간 전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어쩌지. 영화제 기간이라 다음 버스 자리도 없는데,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조림이가 딱 출발 직전에 나타났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렇게 함께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넘게 갔는데, 왠걸. 둘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끊기지 않고 대화를 잘 해나갔다. 아, 조림이는 '패피'답게 그날도 화려한 색의 꽃무늬 가방을 메고 왔더랬다. 요즘에 이런 사람이 있어, 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조림이가 어머어머,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하면서 잘 받아줬다. 휴게소에 들러 간식도 사 먹었는데, 그때 조림이가 자기는 평소에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에이, 그러면서 바삭어포를 사줬다.

        이야기하다, 잠들었다, 차가 막혔다, 하는 사이에 도착 시간을 훨씬 넘겼고, 조림이가 예약해둔 영화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첫 영화를 포기했다.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가서 볼 영화가 없나 찾아보다 늦은 오후 영화 한 편을 같이 예매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봄이를 기다리며 극장 한 켠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조림이의 남자친구 이야기도 들었고, 결혼관도 들었다. 언젠가 조림이의 남자친구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밥 먹고 헤어진 뒤 늦은 오후에 다시 만나 예매해둔 영화를 맨 앞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란히 앉아서 봤다. 끝나고 좋았다, 보길 잘 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 이야기했다. 낮은 산 같은 높은 곳에 주인공이 살았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야경이 근사했다. 그걸 나란히 앉아 같이 '올려다'(하하) 보는 느낌이었다.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고. 그러네. 조림이 말처럼 전주에 다녀와서 우리가 깊어지기 시작했네. 그 시간들이 있어서 이렇게 가까워졌네.

       그런 조림이가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니카라과로 간다. 니카라과는 처음 들었는데, 듣고 오랫동안 아프리카의 어디 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미였다. 그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하고 온다. 조림이를 당분간 모임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쉽지만, 그녀가 보여줄 그곳의 풍경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그러니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2년을 꽉꽉 채우고 왔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잘 먹고, 안전하게 조심히 잘 돌아다니고, 좋은 생각과 좋은 풍경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왔음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그 날의 버스에서처럼, 그 날의 극장 한 켠에서처럼, 정답게 들려줬음 좋겠다. 조림이는 어여쁜 미모를 지닌 쿨-걸인데, 얼핏보면 시크한 것 같지만, 참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바르셀로나 여행 갈 때도 날짜를 챙겨 잘 다녀오라 인사를 건네 주었고, 엽서를 보내기 전이었는데 언니가 엽서를 아직까지도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어, 엽서가 분실이 된거야, 하고 먼저 답장을 보내준 사람이다. '패피'인 그녀가 니카라과에서 입을 패션들도 기대가 되고.

        이제부터 2년동안 조림이가 보고 싶을 때는 니카라과 원두 커피를 마시겠다. 그녀가 그곳에서 보내 줄 첫 엽서가 무척 기대가 된다. (이것은, 유언의 압박-) 화이팅, 장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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