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안주는 계란지짐이와 복어포
    모퉁이다방 2017. 6. 9. 01:10




       내 기억에 따르면, 외할아버지는 노년에 항상 외로움과 술에 취해 계셨다. 외로움이 먼저인지, 술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외할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손녀인 내게는 따스한 사람이었다. 같은 읍에 살았던 우리가 외갓집에 하도 놀러오지 않자 할아버지는 직접 우리 아파트에 찾아오셔서 멀뚱멀뚱 한참을 계시다 가시곤 했다. 아, 나는 왜 그렇게 애교 없는 손녀였을까. 얼마전 외삼촌네랑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는 외할아버지가 손재주가 무척 뛰어난 사람이란 걸 알았다. 오늘은 외식의 날이어서 S씨와 N씨와 함께 근처 휴게소에 가서 올해 첫 모밀국수를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왜 이렇게 에세이들이 수도 없이 출간되는가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그랬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시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쉬워 어디에라도 적어두고 싶어하시는데, 그런 이유로 세상에 에세이들이 이렇게 많이 출간되는 것 같다고. 예전에는 세상의 이토록 수많은 에세이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아버지의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S씨는 멋진 아버지를 두었다고 이야기해줬다. 내가 이번 수업을 듣기로 결심한 건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이었다. 동생이 최근에 그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그 피들이 모두 언니에게 갔나봐. 만일 그렇다면 나는 노력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온갖 핑계를 대고 하지 않던 노력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야 덜 미안하고, 그래야 더 고마울 것 같았다. 오늘 친구에게 수업을 빼먹고 맥주나 마시자고 했는데, 친구가 그러면 안된다고 수업을 들으러 가자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물론 고마운 마음이 든 건 수업 후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니 이번 과제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과제이자 마지막 과제이다. 친구에게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친구가 좋은 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내게 이런 친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오늘 입방정으로 버스에서 땀범벅 수난시간을 보냈지만, 친구 때문에 보람찬 저녁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기필코 쓸 것이다.



    D-1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