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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의 소리
    서재를쌓다 2017. 5. 5. 18:41




       <사일런스>는 기다리던 영화였다. 작년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여러 이미지들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했다고 해서 그 부분들이 어떻게 영화화되었을까 궁금했다. 영화는 역시 원작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꽤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기사를 찾아보니 마틴 스콜세지는 오래된 가톨릭 신자이고, 젊은 시절에 <침묵>을 읽고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여러 번 무산이 되고 그의 나이 60대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젊은 시절보다 깊어진 뒤에 만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내 생각인지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로드리게스 신부 역의 앤드류 가필드는 늘 얼굴이 어린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그를 좀더 다르게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데, 후반부가 이상한 거다. <침묵>은 저런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결말을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좀더 늘어뜨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출간되자마자 사다놓았다가 잘 읽히지 않아 책장에 꽂아뒀던 <침묵의 소리>생각이 났다. 이 책은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사람들이 <침묵>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제목 그대로 '신이 침묵하고 있다'라고 읽어내는 걸 보고 그렇지 않다고 '신은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 그의 말년에 펴낸 책이다. 소설 <침묵>의 집필 과정 등에 대한 에세이와 <침묵>과 관련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에세이는 잘 읽혔다. 그리고 소설의 중요한 결말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결말이 관리인의 일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많은 나라에서 책을 출간을 할 때 해설 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싣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일지 부분이 <침묵의 소리>에 실려있다. 그 일지 부분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책을 읽어나가는데, <침묵>에서 잊혀지지 않던 이미지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로드리게스 신부, 그러니까 앤드류 가필드가 관청으로 고문을 받으러 떠나는 신자들에게 재차 낮게 읊조리던 장면. 밟으세요, 밟으세요. 순교하지 말고, 신의 조각상을 발로 밟고 배교하라는 것. 그 장면으로 앤드류 가필드를 다시 보게 됐다. 언젠가 나가사키에 가보고 싶다. 엔도 슈사쿠가 주로 머물렀던 호텔을 검색해봤는데, 오래된 호텔이었다. 높은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좀 힘든 곳이란다. 그 대신 나가사키 전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 호텔에 머무르면서 나가사키 야경을 내려다보며 소설 <침묵> 속 인물들을 떠올려 보고 싶다. 신을 믿는 신자들에게 신을 새긴 조각상을 발로 밟아도 괜찮다고 했던 신부, 박해받는 이국의 땅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신부, 갖은 고문과 집요한 강요로 인해 개종을 했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신을 섬기고 있었던 신부. 그리고 끊임없이 배교하고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던 신도.


    *


       내가 취재하러 가는 목적은 사실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이라면 이미 충분히 조사해놓았기에 머릿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내가 그곳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나의 주인공들이 일찍이 거기서 맡았던 공기의 냄새나 귀로 들었던 바람 소리, 눈으로 보았던 태양빛과 풍경인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확인하면서 '그는 이 바람소리를 이렇게 들었겠지.' '틀림없이 이 바다를 이렇게 보았을 거야'라고 상상한다. 그것이 소설을 쓸 때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가사키를 다시 찾아감으로써 내 안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차츰 분명하게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 p. 27-28


       그러나 "왜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냥 소설가의 감이겠지요."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가란 자기 자신을 투영하기 쉬운 인물을 직관적으로 알아내기 때문이다.

    - p. 40


       여담이지만, 일찍이 내 소설 중 하나가 대학 입학시험 문제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작품의 일부가 지문으로 인용되고 나서 "주인공은 어떤 기분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였는지, 다음의 보기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항을 선택하시오"라는 질문이었다. 나중에 나도 문제를 풀어 보았지만,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대학이 정답으로 인정했던 답은 전혀 달랐다. 즉 나는 모든 항목을 다 선택했는데, 대학은 단 하나의 항목만이 정답이라고 정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말해 두거니와, 그 글을 쓴 작가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바로 나다.

    - p. 77


       아마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가장 적합한 거리나 장소를 그 어딘가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음의 열쇠가 꼭 들어맞는 열쇠 구멍을 일본 혹은 외국의 어딘가에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나는 가나자와를 좋아한다. 집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음식도 맛있고, 정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좋아하는 도시'에 불과할 뿐이다.

       오카야마에 비세이쵸라는 마을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곳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거리'라는 느낌은 없다.

       '자기의 거리'란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품어왔던 문제, 지금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이런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장소이다.

       호리 타츠오는 자신의 내면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나카노 현의 오이와케에서 찾아냈다. 나에게는 그것이 나가사키이다.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단지 하나의 관광도시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에게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경우에는 각자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가사키는 내가 소년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끌어안고 왔던 문제를 모두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마치 맛도 있고 영양분도 풍부한 음식처럼.

       나가사키에 가면 그 거리가 내게 끊임없이 문제를 내주고 말을 건네준다. 그것은 그러나 나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가사키를 보아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문제가 있고, 또 자신만의 마음의 장소가 있다.

    - p. 89-90


       일본에 신의 복음을 전하러 온 성자인 기리시단 신부(바테렌)는 왜 소박한 일본 신도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참으라는 지혜를 강요했을까? 어째서 박해를 참으면서까지 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가혹한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서 배교하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신이 만일 자비의 신이라면 이런 경우 배교했다고 해서 벌을 주실 리는 없지 않겠는가?

    - p. 108


       그들은 여기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배교자인 그들에게는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 알고 있는 데우스가 무서웠다. 이때 그들에게 있어서 데우스는 추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틀림없이 순교한 서구의 선교사의 이미지로서 느껴졌을 것이다. <순교의 권유>를 그들에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도 고문을 참고 견디면서 신앙을 관찰했던 이들 서구 선교사가 그대로 데우스의 이미지와 겹쳐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강한 선교사나 강한 신도는 배교자에게 진노하고, 배교자를 책망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엄격한 '아버지' 대신에 자신들을 용서해주고, 그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는 존재가 필요하였다. 분노의 아머지가 아니라 자상하고 부드러운 어머니를 필요로 했다. 개신교도들에게 성모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에게 있어서는 성모는 중개자로서의 의미가 있다. 성모에게 드리는 기도 속에 여러 번 "중개"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성모는 배교한 자들과 그들의 자손에게 자신들을 위해 빌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 p. 114


       지오로 일행이 돌아간 뒤에 방에 돌아왔다. 술 탓일까, 열이 나서 창문을 열자 큰 북을 두드리는 듯한 바닷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움은 깊숙이 깔려 있었다. 바닷소리가 어두움과 정적을 한층 깊게 만들고 있는 듯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밤을 보냈지만 이처럼 깊은 밤은 드문 일이었다.

    -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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