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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월의 연차
    모퉁이다방 2016. 10. 26. 21:22



       작년 말에 십만원짜리 적금을 들었더랬다. 제일 짧은 기간으로 6개월 만기 상품이었다. 6월에 만기가 되었다는 문자가 왔었다. 그동안 은행갈 시간이 없어 연차를 맞이하여 은행에 갔다. 기다리는 동안 최순실 관련 뉴스를 봤고, 내 차례의 번호가 울렸다. 만기된 적금이 있어서요, 라고 말하고 신분증을 건넸는데, 검색을 해본 직원이 만기된 적금이 있다고 하셨죠? 라고 되물었다. 흠, 결론은 만기된 적금은 자동으로 내 계좌에 이체된 거였다. 그것도 6월에. 6월에 나는 60만원이 생겼는데, 그것도 모르고 월급이 좀더 들어왔구나, 이딴 생각도 하지 않고, 어느새 다 써버린 것이다. 어느 카드값에 충당된 게 분명하다. 이런 경제관념이 없는 한심한 것아. 은행을 들어가기 전엔 60만원을 어떻게 할까 설레였었는데, 은행을 나서는 나는 빈털털이였다. 흑-


       여의도에 있는 아버지 병원에 가면서도, 몇번을 갔던 길인데도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버렸다. 그래서 일찍 도착해 맛있는 병원 커피를 사먹으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예약을 했는데도 일반 내과로 가서 처방을 받으라는 간호사의 말에 짜증을 내버렸다. 결국 간호사는 내 이야길 듣더니, 소화기 내과에서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줬고, '그래서 약은 다 드신거죠?'가 다였던 5분도 안되는 진료가 끝난 뒤, 2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지불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한달동안 병가를 내셨다. 우표를 사려고 병원에서 우체국까지 걸었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공기가 뿌옇고 눈이 따끔거렸다. 우체국에서는 규격외 엽서 우표값이 270원이 아니라 390원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루종일 고생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당연하지. 으이구) 동네로 와 몇 일 전에 찜해놓은 돈까스집에 가려는데, 처음으로 내려본 정류장은 돈까스집이랑 많이 멀었다. 한 정거장 걷고 있는데,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보였다. 나는 얼마 전부터 최신식 기계를 겸비한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발견하면 꼭 무언가를 사 먹는데, 주로 키리이다. 그 전에는 응암동에 있던 야쿠르트 아주머니 덕분에 키리를 치즈만 따로 판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과자가 있는 키리 한 통, 치즈만 있는 키리 한 통을 구입했다. 각각 4,500원과 5,500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알겠다고 하며 카드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결제를 했는데, 이상하다며 만원이 결제가 되었다고 했다. 이상하다, 만천원이 결제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럼 현금 천원이 있으니 드리겠다고 했다. 계속 이상하다를 연발하던 아주머니는 천원을 받았다. 이어폰을 끼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꽤 지난 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두드렸다.


       사천 오백원에 오천 오백원이니 만원이 맞는 거예요. 만원이 맞는 거죠? 그렇죠?


       아주머니는 천원을 다시 건네주고 돌아가셨다. 아, 이런 경제관념 없는 한심한 것에게 천원을 되돌려 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고마워라. 고맙습니다. 아, 나도 엉망인데, 나라는 더 엉망이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만 엉망이 아니네. 겨우 천원 때문에 최신식 기계를 놔두고 달려오시다니. 어제부터 나라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니지, 어제부터가 맞나. 아무튼 11월부터는 경제관념 좀 챙기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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