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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서재를쌓다 2016. 8. 6. 00:50





       한번도 안 가봤지만 숲님이 추천해 주셔서 언젠가 가 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동네 북카페가 있다. 한번도 안 가본 주제에 블로그를 즐겨찾기 해 놓았는데, 어느 날 소규모의 일본어 스터디를 진행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인이 가르쳐주고, 수업 속도도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거다 싶었다. 공부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설명을 해주시는 분의 목소리와 말투가 좋았다. 목소리 만으로 좋은 사람이구나 신뢰감이 느껴졌다. 카페 스텝인데,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일본여행을 가면 서점에 가곤 하는데, 무슨 책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할 결심을 했다고. 여러 가지로 좋았는데, 수업료가 비쌌고, 히라가나부터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망설여졌다. 결심이 서면 연락을 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키나와에서 마지막 날, 돌아가서 해보기로 결심했다. 왠지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어도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 빼먹지 말고 익히는 계기를 만들자 싶었다. 마침 여행이 끝나고 먼저 연락이 왔다. 그런데 요일이 바뀌어서 퇴근하고 가기엔 좀 벅찬 시간이었다. 셔틀이 없는 요일이라. 그래서 좀더 나중에 함께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오키나와에 다녀와서 열심히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는 말과 함께. 그러자 그 분이 이 책 얘길 했다. 오키나라에 울랄라라는 헌책방이 있는데, 그곳을 가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오키나와라고. 그래, 내게도 이 책이 있다. 오키나와 가기 직전 사 두었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책. 카페 스텝 분 덕분에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사실 책을 구입하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가이드북을 사야했는데, 가이드북이 헌책이라 배송료가 들었다. 배송료를 없애려면 다른 책을 한 권 더 사야했는데, 소개글과 독자들의 평을 읽는데, 아무래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구입을 했더랬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자, 꽤 재밌었다. 소설도 아니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친구와 함께 치맥을 하기로 한 날은 먼저 가게 안에 들어가 맥주를 시켜놓고 친구가 올 때까지 야금야금 읽었다. 마지막의 중국 이야기는 그저 그랬는데, 그 전의 오키나와 이야기가 재밌었다.


       저자는 도쿄의 서점에서 근무를 했는데, 오키나와 나하시에 분점이 생기자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지원을 했다. 오키나와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하 지점에서 2년동안 근무를 했다. 향토책 코너를 맡으면서 오키나와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사람들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특이하게도 오키나와 지역 출판사가 출간하는 오키나와 현산 책이 많다. 그 책들은 주로 오키나와 내에서만 유통이 된단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역사나 문화에 관련된 책이나, 오키나와 출신 작가가 쓴 책은 신기하게도 꽤 많이 팔린단다.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확실히 오키나와는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자체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오키나와에는 헌책방들도 많은데, 어쩌다 저자는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책방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누군가 한번 해봐, 라고 권유하는데 그래, 진짜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우다 도모코 씨는 오키나와의 복작거리는 시장 안에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을 열었다.


        서울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키나와의 울랄라 씨를 상상했다. (울랄라는 저자의 별명이다) 반찬가게, 우산가게로 복작거리는 시장 안에 조그맣게 열려있는 서점, 작은 공간의 벽면에 책장이 꽉 차 있고 그 책장에 책들이 꽉 차 있는 모습, 그 서점 한 켠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울랄라 씨. 오키나와 여행을 마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행 전에 먼저 읽고 가보질 않은 걸 후회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가보지 않은 것도 좋았다, 라고 생각했다. 가보지 않은 대신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책에는 울랄라 서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상은 제법 근사했다. 사실 울랄라 씨가 여자라는 사실도 책의 중간 즈음 울랄라 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오면서 알았다. 그 떄의 충격이란! 지금까지 정말 남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는 꿈을 결국 이뤘고, 그 꿈이 일상이 되었고, 꿈이었던 시절보다 현실은 녹록하고 조금은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그 일상을 기록하며, 또 하나의 꿈이었을 게 분명한 책까지 썼으니. 그걸 오키나와 사람 뿐만 아니라, 본토 사람들도 읽고, 일본 사람 뿐만 아니라 바다를 건너 나같은 외국인들도 읽고 있으니. 아아, 책을 보면 중국 독자도 있었다. 일상이 이야기가 되고, 마침내 책이 된 사실이 부럽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것. 앞으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아. 울랄라 씨도,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도 힘내주세요. :)



       "오키나와 좋아요?"

       "네."

       "어디가 어떻게?"

       "살기 좋고, 사람들도 좋고요."

       진심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역사와 서민 생활에 대해서는 제쳐둔 채 내게 득이 되는 부분만 보고 오키나와를 판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처음 한 해는 정신없이 살았다. 두 번째 봄을 맞으며 이후의 삶을 고민할 여유가 좀 생겼다. 오키나와에 오기 전에 상사는 "2년만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겨우 2년 만에 도쿄로 돌아간다면 관광객과 다를 게 없으니까.

       오키나와 생활을 단순한 경험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써 큰맘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정말 오키나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딱히 답을 내지도 못한 채 떠나야 한다니...

       고쿠사이 거리를 걷다가 선물 가게에 들어섰을 때 예의 "보고 가세요"란 권유를 듣는 일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방인이 아닌 걸까? 전근을 핑계로 벗어나려 했던 쳇바퀴 같은 삶을 이제는 끝내야 했다.

    -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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