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연휴, 둘째날
    모퉁이다방 2016. 5. 10. 22:18







       COFFEE. 간판에 불도 안 들어온다. 그냥 커다랗게 COFFEE라고 써져 있다. 운동을 하고 동생이랑 지나가다가 뭐지? 하고 깜깜한 안을 들여다봤다. 뭔가 심상치 않은 커피집이 생긴 것 같다. 다음 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커피를 마시러 갔다. 계산을 하면서 물어봤다. 여기 언제 생긴 거예요? 이 주 정도 됐어요. 황작가로 추정되는 주인님은 매력남이었다. 상냥하고 친절했다. 우리는 이 곳의 단골이 되었다. 주로 운동을 끝내고 가서 공부를 한답시고 수다를 잔뜩 떨고 왔다. 매일매일 회사에 나가야 하는 고단함에 대해. 로스팅도 하는 곳이라 큰맘 먹고 원두를 샀는데, 원두가 내 취향이었다. 나는 묵직하면서도 산미가 강하지 않은 원두를 좋아하는데, 여기 원두들이 그랬다. 닮은 여자애 둘이 와서 커피도 마시고 원두도 사고 오래 있다 가니까 주인님에게도 우리가 단골손님이 된 듯 했다. 가끔 맛보라며 서비스로 다른 커피를 내려줬다.


       어느 날. 동생은 약속이 있었다. 나는 혼자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갈까 망설이다 결국 길을 건너 들어왔다. 요즘 내가 빠져 있는 아이스 라떼를 시켰다. 여기 라떼는 뭔가 다르다. 무척 고소하고 적당히 달달하다. 동생은 많은 종류의 원두를 직접 갈아 내려주며 맛을 표현해보라며, <신의 물방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발'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며 나를 수도 없이 훈련시켰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맛은, 시다, 시지 않다, 묵직하다, 맛있다, 맛이 없다, 무척 맛이 있다, 정말 맛이 없다 정도. (ㅠ.ㅠ 나도 이런 내가 싫어요.) 그 날, 카페는 한산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는 커피를 마시고 갔고, 뒤늦게 들어온 중년남녀도 잠시 수다를 떨다 갔다. 주인님은 내가 시킨 아이스라떼를 가져다주고, 뒤이어 작은 잔을 하나 더 가져왔다. 새로운 원두로 테스트 중인데, 맛 좀 봐주세요. 오 마이 갓! 이런 건 동생한테 해야 하는 건데;; 걔는 <신의 물방울> 수준으로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인데. 나는 천천히 두 맛을 음미해봤지만, 결론은 둘 다 맛있다는 것. 원래의 라떼가 좀더 고소하다는 것. 한 시간 넘게 책을 읽고 핸드폰을 하다 일어섰다. 아아아아, 주인님이 오신다. 내 쪽으로 오신다. 손은 마주 잡고 맛이 어땠냐고 물어보신다. 결국 그 날, 그 집 라떼 맛의 비밀을 알았다. 우유를 한 종류만 쓰지 않고 여러 종류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쓰는 것. 그 날, 주인님의 활짝 핀 잇몸 웃음을 처음 봤다.

       연휴 둘째 날, 비가 왔다. 이른 오후에 커피집에 가서 오래 앉아 있었다.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었다. 라떼가 너무 맛있어 두 잔을 시켰더니 주인님이 서비스를 가져다 주셨다. 이번엔 무려 샤베트. 비도 오고, 공짜 샤베트도 맛나고, 연휴는 이틀이나 더 남았고, 읽고 있던 책이 끝이 났고, 이제 새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좋았다. 참 좋았다. (아, 옛날이여.)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