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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월의 시옷
    모퉁이다방 2016. 3. 8. 23:02

     

     

     

       2월의 시옷의 책은 로베르트 무질의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였다. 기석이가 선정한 책이었다. 나는 거의 읽질 못하고 모임에 갔다. 다들 많이 읽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다. 소윤이만 다 읽었다. 소윤이는 힘들게 읽었는데, 무질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고 빙빙 둘러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런데 그런 무질의 이야기를 빙빙 둘러 따라가보면 그곳에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더라고 이야기했다. 무질이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다고. 그러니 그렇게 읽어야 했다고. 그게 무질이 원한 거였다고. (소윤이의 말을 적어두질 않아서 내 멋대로 해석했다) 봄이는 성격 없는 인간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의 자신의 성격이 정확하게 무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시옷에서 이렇지만, 회사에서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이야. 또 다른 곳에서는 다른 모습이고. 어떤게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  (봄이의 말을 적어두질 않아서 내 멋대로 해석했다) 모과는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요즘 자신의 고민들이 이야기들 속에 있어 마음이 덜컹- 했고, 그러니 책 속에 요즘의 자신이 있을 것 같다고. (두 번째 모과의 말은 정말 내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 소윤이는 기석이에게 시집을 선물받았다. 받을 만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곱창을 먹으러 갔다. 모듬곱창과 알곱창을 섞어 시키고, 각자의 맥주와 각자의 소주를 마셨다. 곱창이 나오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마친 솔이가 왔고, 다같이 건배도 했다. 오래간만에 테이블이 아닌 바닥에서 여럿이 모여 곱창도 먹고, 술도 마시고, 밥도 볶아 먹었다. 뭔가 조금 옛날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좀더 오밀조밀하게 느껴졌다. 밥배를 채웠으니 맥주배를 채워줄 차례. 기석이의 단골이었던, 우리가 지난해 늦봄 즈음에 함께 갔던 소굴로 갔다. 가는 길에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 누군가 개워놓은 흔적을 발견했다. 어떻게 딱 그 순간 개워냈을까.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굴에 도착. 우리는 맥주를, 기석이는 (맞을 것이다) 보드카를 시켰다. 병맥주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병규에게 맥주란 모름지기 정성을 다해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소윤이는 대장 자리에 앉아 열심히 셀카를 찍어댔고, 모과와 병규는 그런 소윤이를 찍어댔다. 우리는 다 같이 건배를 했다. 한달동안 재밌는 일이 없었냐고 물었고, 몇몇 사람에게는 재밌는(혹은 그렇지 않은) 일이 있었다. 2월의 화두는 뽀뽀였다. 뽀뽀는 언제든 어디서든 좋으니, 그 순간이 짧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자고 (나 혼자) 결론지었다. 우리는 이성을 볼 때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3월에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일을 각자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혹은 눈물날 정도로 재미나게) 생각해줬다. 3월에는 재밌는 일을 많이 하고 만나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밤은 깊어갔고, 체력이 고갈되는 이들이 있어 (특히 나) 기운이 남아도는 아이들도 그만 헤어져야 했다. 소굴은 두 번째인데 두 번 다 시옷과 간 거다. 나는 첫번째로 소굴에 갔을 때를 떠올려봤다. 아, 우리 꽤 많이 친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새멤버들은 거의 처음이라 많이 어색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시간들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좀더 서로에게 친숙해져 간다. 좋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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