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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보내지 마
    서재를쌓다 2015. 12. 22. 23:56

     

     

     

       함께 책을 읽는 친구가 있다. 먼저 읽으면 좋은 책을 읽었다며 선물해주기도 하고, 좋은 책일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드는 책은 처음부터 함께 읽기도 하고. 그렇게 읽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 가을, 친구가 물었다. 혹시 <나를 버리지 마> 읽었어? 아니. 다음에 만날 때 선물할게. 친구가 가지고 나온 책은 <나를 보내지 마>였다. 하지만 나를 버리지 마, 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지금 이 땅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복제인간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

     

       추석 연휴에 이 책을 읽었다. 서울에서 장유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다 읽었다. 좋아하는 음악들이 랜덤으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이었다. 다행히 차는 막히지 않았다.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어폰에서 이소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현우의 노래를 이소라가 부른 거였다. 터널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에 어두워져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아이가 나오는데, 토미와 캐시와 루스다. 터널 안에서 이소라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이소라가 이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 이제 그대 곁을 떠나가야 해. 외로웠었던 나의 메마른 두 눈에 크고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그대 곁을 이제 떠나는 것을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그댈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대만을 사랑하는 걸 잊을 수는 없지만,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사랑하는 그대여 안녕.

     

       지난 추석, 나는 이소라 때문에, 터널 때문에, 토미와 캐시, 루스, 이 세 아이 때문에 꽤 오래 가슴이 먹먹했더랬다.


     

     

        그런 다음 우리는 짧고 가벼운 입맞춤을 했고, 나는 차에 올랐다. 내가 시동을 거는 동안 토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뒷거울로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한 손을 애매하게 들어 올리고 나서 돌출된 지붕 쪽으로 몸을 돌렸다. 차의 뒷거울에서 광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며칠 전에 맡고 있는 한 기증자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정말 소중한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퇴색하고 만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은 결코 퇴색하지 않는다. 나는 루스를 잃었고, 이어 토미를 잃었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기억만큼은 잃지 않았다.

    - <나를 보내지 마> p. 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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