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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이를테면 에필로그
    여행을가다 2015. 12. 6. 00:23

     

     

     

     

        이런 일이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출근을 하고 함께 밥을 먹는데, 내게 '혼자 여행을 가게 된 게 운명인 것 같아요' 라고 말해준 동료가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는 여행의 감흥이 아직 엄청날 때였으니까 (오랫동안 염원하던 그곳을 혼자서 무사히 다녀오다니!)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동료가 하품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물론 그녀는 당시 만삭이었고, 자주 피곤해했다. (그녀는 임신하지 않았을 때에도 늘 피곤해했다는) 조회시간에도 팀장님 앞에서 하품을 하곤 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여행담을 마무리했다. 그 뒤 내가 여행을 간 줄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들이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그 하품을 떠올렸다. 그래, 처음엔 흥미롭다가 길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 그렇다고 믿고 싶다!) 지루해질 수도 있겠지. 그만 듣고 싶은데 그만 듣고 싶다고 얘기 못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나의 찬란했던 여행담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누군가 물어보면 되도록이면 짧게 말했다. 좋았어. 외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좋았던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 또 가고 싶다. 이 정도로 끝냈다. 그렇지만, 내 기억이 점점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끝까지 들어줄 수 있고, (자기도 모르게)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중간에 하품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래서 이곳에 최대한 세세하게 풀어냈다. 물론 여행기가 길어질수록 나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뒷날의 이야기는 충분히 자세히 쓰지 못했지만.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하품을 하지 않고, 지루하다 생각하지도 않고, 끝까지 잘 읽어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다.

     

       포르투 공항에서 마지막 엽서를 썼다. 엽서와 우표가 한 장씩 남기도 했지만, 첫 엽서를 쓸 때 그러기로 다짐했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7월의 내가 한국에 있을 7월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생각,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자는 말 등을 적었다. 그리고 공항의 우체통에 넣었다. 수속을 하고 들어와선 동생들이 부탁했던 에그타르트와 커피가루를 사고, 남은 동전으로 비카,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켰다. 높은 테이블에 커피를 올리고, 높은 의자에 올라가 설탕을 탈탈 털어넣고 휘휘 저어 천천히 마셨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커피. 쓰지 않고 달달했다.

     

        여기 쓴 여행기는 실제 그대로가 아니다. 나는 이처럼 씩씩하고 단단하게 여행하지 못했다. (내 기준에선 그렇다) 이건 시간이 지나 내 기억 속에서 과장되고 축소된, 꽤 미화된 여행기다. 나는 많은 순간 외로웠고, 그래서 마지막 날은 이제 하룻밤만 자면 돌아간다는 생각에 정말 기쁘게 돌아다녔다.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필요해 한국의 인터넷 카페에 동행을 구하는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퇴짜를 맞기도 했다. 영어가 짧으니 식당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발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리웠던 모국어가 여기저기서 우르르 들려왔을 때, 살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주 푹 잤다. 푹 자고 일어나니 인천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게 꿈만 같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게 다시 없을 소중한 기억들이 되었다. 흠. 여행기를 마치며 든 생각.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가, 한 차례의 여행이,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놓기도 한다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다. 물론 언젠가 강렬하게 나를 바꿔 줄 한 권, 한 편, 하나, 한 차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 한 권과 어떤 한 편과 어떤 하나와 어떤 한 차례가 모이고 모여, 쌓이고 쌓여 나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꿈꾸던 곳에서의 일주일이 나를 단번에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좀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줬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억하는 거. 다음 여행까지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당연하게도 7월의 포르투에서 이금령이 쓴 엽서는 잘 도착했다. 7월의 서울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금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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