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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극장에가다 2015. 9. 30. 22:12

     

     

      

       오늘 휴가였다. 지난 달에는 휴가 없이 버텼다. 아침에 일찍 눈이 띄여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고등어를 구워 아침밥을 먹고 상암으로 향했다. 홍상수의 새영화를 보러. 홍상수니까 밤에 어울릴 영화일 게 분명하지만 아침에 서둘러 보고 싶었다. F열 3번 좌석에서 영화를 봤다.

     

       중반 정도까지는 심드렁하게 봤다. 동생 말대로 김민희가 예뻐보이네, 정도였다. 이야기가 끝나길래 기지개를 펴고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라는 타이틀이 한번 더 나왔다. 그런데 극장 불이 켜지지 않고 이야기가 새로 시작됐다. 아, 어쩐지 영화가 지나치게 짧더라 생각하며 다시 자리를 잡고 이어지는 반복되는 이야기를 봤다. 이 2부의 이야기가 내 아침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는 어쩌면 1부의 이야기가 남자의 관점이고, 2부의 이야기가 여자의 관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나는 2부의 처음과 끝에 보였던 김민희의 변화에 감흥했다. 내가 본 영화는 이렇다. 김민희는 이쁘다. 이쁜 여자이다. 그런데 김민희는 그걸 모른다. 자신이 이쁘다는 걸.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홍상수의 찌질했던 여느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재영은 갑자기 나타나서 그녀에게 이쁘다고 말해준다. 너무 이쁘다고. 김민희는 조금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는데 정재영과 하루를 함께 보내면서 자신이 이쁜 사람이라는 걸,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신에게 빛나는 구석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김민희가 정재영의 영화를 처음 보고 눈발이 마구 휘날리는 거리로 나와 길을 나설 때, 그 뒷모습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나는 이쁜 사람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괜찮은 사랑을 할 수 있고, 좋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뒷모습이었다. 정재영은 찌질하고 꼬질꼬질하고 그렇고 그런 (홍상수의) 남자지만 '지금'의 김민희에게는 맞는 사람인 거다. 그는 김민희에게 자신감을 안겨주고 떠났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휘날리는 눈발이 결코 추워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따뜻해보였다. 

     

        이렇게 영화를 해석하고 보니, 이건 나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고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이뻐지고 싶고,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고, 괜찮은 사랑을 하고 싶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 이 모든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싶은 거다. 한강에서 B와 돗자리를 깔고 천천히 그리고 웅장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B에게 말했다. 홍상수의 영화에 우리가 오늘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다고. 그러니까, 지금이 맞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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